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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미술 작품들

푸른바다99 2022. 4. 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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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혹시 르네상스부터 시작하냐 이렇게 좀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예 그런데 여러분이 방금 봤던 그 작품들 그리고 우리가 좀 뭐 패러디 속의 작품들 우리 주변에 있는 명작들 대부분 르네상스 이후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혹시 르네상스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나요. 
최후의 반찬
그 사람 이러고 있는 창조 모나리자
지금 아마 보시는 이런 작품들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들이고요 여러 가지 상품에도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런 그림들입니다. 
맞아
근데 르네상스 이전의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어요.

르네상스 이전 시기를 우리가 이제 중세라고 부르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요. 
사실은 이제 중세 하면 암흑기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류 한계 이런 것들을 반성하고 우리들의 삶의 가치들을 천상에다 놓았던 그런 시기이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미술에 대한 표현은 조금
자제되고 억제되는 시기가 중세라고 할 수 있고요 천상의 세계에서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결국 세상의 주인공으로서 인간이 다시 쓰는 시기가 근대라고 할 수 있고요 근대의 첫 장을 우리가 좀 더 멋있게 불러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 르네상스
문화의 빛과
다 그렇게 이제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어떤 변화하는 어떤 정서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증거물 그게 바로 이제 노유화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부끄러운 게 아니라 드러낼 수 있고 자신할 수 있는 이런 인체의 표현으로 간 거죠. 
그런데 우리가 이제 누드 미술이라고 하면 이게 인간의 어떤 아름다움과 인간을 표현하는 그런 예술의 세계라고 다 얘기는 하지만

이게 하나의 방향으로 읽을 수 없다는 루드와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이 두 개의 경계 소위 말하면 예술과 외설에서 얼마만큼 이 작가가 긴장감 있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라고 했어요. 
맞아요. 지금 보시는 이 작품들을 보면 좀 더 대범하게 바뀌게 되는데요. 
이건 어떠세요.
아 진짜 대박 다
예 세죠 조르조네라는 작가가 그리다가 절명을 해요. 
그래서 후배 작가인 티치아노가 그랬는데요. 
이 작품이 원래 이 정도로 너무 세게 읽히지 않게 장치를 하나 걸어놨어요. 
아 그래요 비너스하고 함께 다니는 사람이 꼭 누구죠

엑스레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어머
이걸 다시 그렸던 최종 완성을 했던 치치아노라는 작가는 아름다운 이 대자연에 이렇게 편하게 잠잘 수 있는 여인은 이 비너스 밖에 없다라고 생각을 했고 굳이 여기에다 큐피드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어떤 신적인 존재로 읽힐 수 있다라고 아마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러면은 예 티치아노의 작품을 보시면 어떨까요. 
이게 이제 어떻게 보면은 아까 우리가 조르조노에서 봤을 때는 눈을 감고 좀 뭔가 몽롱한 현실에서 좀 한 발 벗어나 있는 느낌인데요. 
지금 우르비노의 비너스 같은 경우에는 눈을 번쩍 떠가고 우리가 아주 자신 만만하게 이렇게

심지어 이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요.
좀 더 비너스보다는 인간화된 모습으로 좀 나가고 있는데요. 
끝판왕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이고 남이 가려줬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두 명입니다.

그리고요 엄마와 아들 간의 키스 치고는 약간 교감이 더 강한 지금 키스를 나누고 있는데요. 
에로틱하죠. 그런데 여기에는 이 주변을 보시면 놀라울 만한 이야기들이 걸쳐 있는데요. 
이게 또 바로 옆에 머리에 이렇게 쥐어 뜯는 사람이 보이시죠 해 그냥 이게 사랑에 대한 질투와 증오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요. 
보통은 이 당시에 이제 유럽의 상류층에서 무시무시한 병이 하나 도는데 그게 바로 이제 시필러스라고 하는 매도

매독에 의해서 몸이 푸르게 타들어가면서 그 매독균이 머리에 들어갔을 때의 그 고통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구요. 
그런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바로 뒤에 보면 머리가 텅 비어 있는 사람이 화려한 거 망각 이런 것들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고요 그 아래 보면은 가면이 있습니다. 
위선 뭐 이런 게 있고요 더 괴기스러운 거는 저희 머리

아예 뭐
아 드디어 보셨군요. 너무 한이는 꿀통을 들고 있어요. 
꿀통 달콤한 근데 뒷손에는 뭘 숨기고 있는데 전가림 미 사랑의 두 가지 가치가 있어요. 
달콤하지만 너무 들어갔을 때 보이는 그 위험하 더 재미있는 거는 맨 마지막에 등 뒤에 모래시계가 있죠. 
대머리 아저씨 할아버지가 그 파더 타임입니다. 
사랑과 이게 다 시간이 가면 끝난다라는 시간의 신입니다.

에로틱하고 감각적인 그림이지만 읽어 나가면 읽어나갈수록 사랑에 대한 대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어떤 고통 기가 막히게 아주 섬세한 그림입니다.

2천 년에 이탈리아에서 벌어졌던 설문조사에 의하면 모나리자라고 답한 사람이 팔십오트요

의미가 없네요. 그런데 저 그림이
뭐가 이렇게 유명한
진짜 모르겠어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모나리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잘 알려진 작품이었습니다. 
예 그런데
돈 사건
1911년 8월 여름으로 알고 있는데요. 
모나리자가 로구르의 백주에 없어졌습니다.

보시면 모나리자가 지금처럼 전시가 되어 있지 않아요.

그 당시에 인기가 좀 없으니까
예 그 당시에 그 파르지안이라는 유명한 일간지 그 당시에 백사십만 불을 거의 찍었던 초유의 신문이었는데 거기에 사실 삼 주 동안 이 작품이 실리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이제 누가 몰라도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알게 값이 치솟았네 이거를 훔친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디첸조 페루지아라는 사람인데요. 박물관에서 잠시 일을 하던 사람이었고 원래 여기 작업복에다가 이제 감싸놓고 이탈리아로 가져갔어요.

그리고 이 작품을 피렌치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에다가 팔려고 하는 그 사이에 이제 아 발각이 돼서 루브르로 돌아오게 돼서 지금은 이제 루브르에 걸려져 있는데요. 
이게 변명을 기가 막히게 둘러댔습니다. 
이 사람 이거는 이탈리아 거니까 이탈리아로 가져왔다 소위 말하는 민족주의 카드를 꺼내

짠데 잘 먹히네 이거
중요한 거는 이 때를 중심으로 해서 모나리자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작품이 되었구요. 
그러네요. 그 때문에 이제 모나리자의 유명세의 신화의 시작은 어떻게 보면 이 사건으로 벌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솔직히 빈첸초 아니었으면은 완전 탑 예술은 아니었겠네요. 
그러면 제가 이제부터 이 작품은 꼭 어떤 사건 계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작품일 수가 있다라는 걸 한 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을 한 번 보도록
아시죠 이게 그 당시 바자리라는 작가가 특히 레오나르도의 생애를 정리할 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마 들었던 것 같은데요. 
모자리자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정확합니다. 
프란치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 미사를 그린 것이고 어이 주인공의 이름이 리사 게라르딘이라는 어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눈썹에 대한 표현도 굉장히 정확하게 나옵니다.

눈썹은 땅구멍을 따라 어떤 부분을 무성하고 아주 섞는 것도 있어서 아주 더 자연스럽다. 
이렇게 했는데 이 그림에는 모나리자에는 눈썹이 없어 두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일단은 그렸지만 훼손됐다 아 이게 왜냐하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최후의 만찬 같은 경우는 물감이

별로 안정성이 떨어져 가고 그리자마자 흘러내렸다라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는데요. 
어쨌든 이 그림도 실질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이게 사라졌을 수도 있구요. 
유하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일종의 코팅을 입혀야 됩니다.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바니싱이라고 얘기하고요 그냥 쉽게 얘기하면은 리스치를 한다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근데 이게 백 년 그리고 이백 년 지나면은 이게 약간 브라운의 톤이 되면서 탁해져요. 
그래서 이거를 한 백년 이백년마다 닦아내고 다시 입힙니다.

근데 닦아낼 때 실수로 잘못 닦으면 미묘한 부분들이 없어집니다.

이 작품 가격은 한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이 때 2천 억이었나
최 이제는 가격이 너무 커지다 보니까 최고는 안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이게 참 재미있습니다. 미술이 가진 매력이기도 한데요. 
돈으로 환생되는 마켓에서 가장 고가가 미술입니다. 
작품의 기준이 뭐가 되는 거예요. 가격 너무 슬픈 거예요. 
사실 가격이라는 거는 미술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돼야 되는데

그 여러 가지 어떤 작가의 실험 정신 이런 것들을 다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다라는 게 지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인데 이거에 저항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바로 낙서와 뱅크 씨는 이거에 저항하는데 문제는

뱅크시라고 하면 이렇게 그래피티로 굉장히 유명한 예술 그룹이라고 해야 되나요. 
베이에
홍길동이라고 얘기하면 딱 맞는
영화도 찍었잖아요.
영국 사람들이 제일 원하는 게 뭔지 아세요. 
자기 벽면에 뱅크시가 와갖고 제발 한 번 하 참 최근에 이야기가 나오게 됐는데요. 
한번 영상을 보시겠어요.
가격이 결정된 순간 그 버튼을 눌러 갖고 셀프 디스트로이 그냥 파괴시켜 버린 건데

진짜 바로 그만큼 자기가 거래되는 것들 시장화 되는 것들을 거부했는데 문제는 이 15억에 사겠다는 사람이 이 작품을 샀을까요. 
안 샀을까요.
너무나 즐거운 거예요. 그 사람 대 땡

근데 결국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어떤 작품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서 벌어진 일이

아무래도 우리가 신문을 딱 열면 거기에 어느 작품이 얼마에 팔렸다. 
여기에 눈이 확 가다 보니까 맞아요. 
계속 우리가 그런 쪽으로 가는 아쉬움도 좀 있습니다.

자 지금까지 어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들을 좀 많이 했는데요. 
그 뒤에 다가오는 미술도 만만치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바로크
어원은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은 약간 이 시대 미술이 너무 다이나믹하고 괴팍해서 약간 낮춰 부르는 말인데요. 
지금은 이 용어보다 더 좋은 용어가 없을 만큼 이 시대 미술을 아주 잘 표현해 준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중세 이후 르네상스까지도 여전히 강력했던 교회가 분열돼

교회 분야
프로테스탄트 신교가 나오게 되면서 이제 선택을 해야 돼요 이쪽 아버지 저쪽 아버지 어머나 이거 굉장히 어려운

지금이랑 똑같네
이뿐만 아니라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게 알았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세계가 도는 게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거예요. 
하나를 믿었던 것들이 다 갈라지기 시작한 시대였고요 그러다 보니까 미술도 굉장히 다이애막하고 아주 역동적인 미술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림의 제일 큰 차이가 뭐에서 왔어요.

영양 그리고 색감
보정도 했네요.
신체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 고전적인 그리스 로마 조각 같은 여인들 하지만 여기서는

뭔가요 바로크는 왠지 행위 예술을 하는

같은 느낌이 있어요. 바로 그렇죠 이게 사실은 이 작가는 어두침침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고요 지금 이 그림은 선술집 가갖고 등장 인물들을 모아가고 그렸다고 할 만큼 그 주변에 있던 인물들이 생생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성모님 여기에 보이는 세레자 요한은 하늘에 있는 천상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인물들을 통해서 성경의 이야기들을 우리 주변에 우리 가까이 있는 이야기로 다시 생각해 보는 그런 그림들을 그리게 됐는데요. 
그 세계가 두 개로 갈라지면서
봉가를 주장하던 카톨릭계에서의 어떤 미술의 변화를 카라바지오를 중심으로 한번 살펴야 하겠습니다. 
미켈란젤로가 2명 있는 거 아세요. 네 그래요 왜요 둘 다 유명합니다. 
지금은 미켈란젤로 보거너레틴을 기억을 하는데요. 
카라바조는 원래 이름이 미켈란 젤러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내가 미켈란젤로보다 낫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놀라운 거는 이 작가가 끼친 영향력은 실제로 미켈란젤로에 뒤지지도 않습니다. 
정말 아주 마력 같은 매력에 빠지는데요. 
한 가지 좀 괴로운 거는 이 작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어디에 남아 있냐면 경찰서에 남아 있어요. 
불법 무기 소지 술집에서 행패 부리기 뭐 이런 일로 전과 기록이 굉장히 많고 일설에는 일종의 테니스 같은 공놀이를 하다가 시비가 붙어 갖고요 상대방을 죽이게 됩니다.

결국 가게 되고요 그리고 도망가는 과정에서 계속 싸웁니다. 
크게 싸워요. 그렇게 그 주변 사람이 항상 수배 내려졌는데 누구든지 카라바조의 목을 가져와라 이런 얘기까지 해

어 목을 베레
이때 이 작가가 쫓기면서 그린 그림도 굉장히 또 어떻게 보면 놀랍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밴 이야기입니다. 
자기 얼굴 아니고 맞는데 저거 본인이잖아 골리앗의 얼굴이다. 
자기 얼굴을 집어넣는데요.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요.

네 그 얼굴이
그래서 이 작가의 그림들을 보게 되면 좀 더 자기 얼굴이 들어가면서 더 강렬하게 된 모습들이 보이는데요.

여왕이 결국 사면을 내렸는데요. 그 얘기를 듣고 돌아오다가 결국 죽는 비문의 작가가 되는 그런 것 생일을 통해서 보여줬던 약간 그런 소란스러운 모습도 있지만 이 작가가 보여줬던 그 그림 자체 성경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아까 로아르 영화처럼 진짜 사실성이 철철 묻어나는

아 그런 모습인데요. 이 작가의 그 영향력을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없어요. 
사실은 레브란트도 알고 보면은 누구 카라바조의 영향이 굉장히 컸던 작가고요 그리고 그 주변에서 로마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바로 이 카라바조의 영향을 거의 벗어나지가 못 하지만 그 수도 없이 많은 카라바주 추종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지금은 바로 젠틸레스 아버지가 화가였고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재능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 두 그림을 보면은 분명히 이 작가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 수가 있는데요. 
네 그 유니트는 한국으로 치면은 일종의 뭐 논개 같은 적장에 목을 목을 베는데요. 
보통은 목을 이렇게 들고 있는 장면 아니면 고자기에다가 목을 싸갖고 이제 걸어가는 장면이 유디트 도상의 일반적인 이야기인데요. 
카라바조한테 들어가면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목이 칼이 절반이 들어가고
피가 철철철철 흐르고 있고 이 그림에 영향을 받은 비비티의 모습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적장의 머리를 힘으로 누르고 있고요 그 옆에 있는 여인도 이 살인에 지금 동참하고 있는 근데 왜 이런 그림이 나왔을까 하냐면 사실 이 젠틸레스키의 개인적인 생애를 약간 돌아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성이 화가가 된다는 게 굉장히 어려웠고요 사회적 활동 같은 것들을 굉장히 제한을 해놨기 때문에 그런데

17살의 아버지 동료 화가한테 가서 그림을 배우게 됩니다. 
원급법 훈련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요 그러면서 법정에 서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도리어 역으로 당하는 그런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이런 그림 속을 통해 갖고 더 적극적인 어떤 남성에 대한 항의라면 한 그런 것들을 그림 속으로 좀 표현해냈다라는 것

그런데 두 작가가 진짜 둘 다 험악하고 험난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경험하에 의해서 이렇게 나온 것 같아요. 

그렇죠 아름다운 세계가 명작의 세계인 것 같지만 한 발 한 발 들어갈 때마다 그 명작이 비치고 있는 세계는 항상 밝고 명랑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명화를 통해서 배워야 할 점들이 그런 조형이 있는데요. 
그런 부분하고 함께 볼 때 이해가 좀 더 깊어진다. 
이렇게 좀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이야기들을 한 번 더 끄집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밸라스 게츠 스페인으로 한 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는 이제 세빌리아라는 남부에 있는 도시에서 활동하다가 그림을 원치 잘 그리다 보니까 긍정 화가가 된

그러면서 이제 이탈리아 유학까지 가게 되면서 좀 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아주 멋진 화가로 좀 재탄생하게 되는데요. 
그때 그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뭐냐면 라스 마니아스 시녀들이라는 작품이고 이 그림은 초상화이지만 회화의 모든 것들을 담아냈다고 할 만큼 굉장히 깊이 있는 초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상화가 주는 단조로운 사람 얼굴의 기록을 이렇게 깨버렸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스냅 사진 같아요.

대범한 게 저게 본인이 팔레트 들고 지금

그림 안에 들어가 있지 않나요. 왕실의 멤버로서 구성원으로서 자기가 있는 그 당시에 굉장히 높은 신분 많이 들어갈 수 있어 산티하고 기사단 마크까지도 물론 이 그림을 그릴 때는 그 기사단에 못 들어갔는데 후에 추가를 해서 그릴 만큼 자기가 그냥 화가가 아니라 공중 화가이면서 기사에 자기까지 받았던 화가라는 것들을 이 그림을 통해서 표현했던 거죠.

그리고 저는요 이 그림 볼 때마다 다른 부분에 있는

사람이
거울에 녹여냈잖아요.
거울의 위치를 기가 막히게 선정했을 뿐만 아니라 거울을 잘 보시면 헬리피에스 사세 왕과 부부가 저기 서 있습니다. 
최고 권력자들의 표현이 보이는 이 모호한 권력 대충 숨 권력에 대한 어떤 표현 이런 것들이 이 작품을 더 신비롭게 만드는 것이죠. 
다 보면 정말 어떻게 보면 이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철학으로 빠지게 되니까 그림의 그림 철학의 그림 메타 페인팅 이런 걸 얘기할 수 있는 그림이니까요.

그래서 사실은 이 그림은 이후에도 뭐 고야도 그리고 피카소는 이 작품을 다시 수도 없이 그려내 너무나 매력적인 그림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이 정말 그림을 낳는 그런 그림이 됐다.

이 합스그부르크 가문이 뭐 16세기에 보면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다고 할 만큼 강력한 집안이었는데요. 
이 땅을 유지하려면 서로서로 교차 결혼을 계속했던 거예요. 
아 그러니까 인트론을 하다 보니까 무서운 게 유전병도

근친하면서
이게 지금 가장 놀라운 게 이 집안의 특징 중에 하나가 턱이 긴 거였습니다.

근데 저렇게 턱이 길다고 저렇게 그려주면 기분 나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작품은 별로 아마 인기가 없었던 것 같고요 대부분 턱수염을 그린 걸로

그래 티치아노가 그린 그림이 있는데요. 
대단히 마음에 드셨다고 합니다. 안타깝게 이 지금 마가레타 공주는 결국 누구랑 엄마로 보면은 외삼촌 아빠로 보면은 사촌하고 결혼을 해갖고 오스트라의 황녀가 됐는데요. 
굉장히 영민하고 사랑을 많이 받고 그랬던 뭐 공주였지만 결국 스물두 살에 죽게 되는데요. 
이거는 뭐 비극의 시작일 수밖에 없는데 공주님의 남자 동생이 칼로스 2세가 돼서

왕자에 오르게 되는데요. 태어났을 때부터 너무나 병약했고 열 살 때까지 걷지도 못했을 정도로 결국 후사를 남기지 못해서 이 집안은 대가 끊기어 버렸다. 
결국 혼인 정책 정략 결혼에서 시작을 했지만 그거에 의해서 이런 비극적인 가문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그런 건데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라스메니나스의 작품 앞에 섰을 때 불타오르는 벨라스 캐치에

그 부터치에 매료될 수도 있는데요. 합스부르크 가문이 갖고 있는 비극적 종말을 생각하신다면 이 작품은 또 한 번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굉장히 매력 있는 장면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너무 좀 얘기가 무거워졌는데요. 
아니에요. 이건 더 무거운 얘기일 수도 있어요.

너무 잔인하신데요.
한 걸음 더 들어가실 건가요 프란데스에게는 바로 이 네로가 나오는 그 이야기인데요.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찾으러 왔구나

넌 늘 나와 함께 있을 거라고
난 오늘 드디어 봤어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그림 두 장을 그래서 그래서 나는

너무너무 행복해
바트라슈
많이 피곤하지 나도 이젠 너무 지쳤어 그래서 그런지

무척 졸려
이 아이가 그 억울한 누명을 써서 할아버지도 없는 상태에서 고아인 상태에서 마을에서 쫓겨나요. 
방황하다가 자기가 보고 싶었던 그 로벤스의 그림을 보게 되는데 원래는 돈만 받고 보여줬던 거예요. 
원체 위대한 작품이다. 보니까 요즘 입장료 보듯이 근데 이날은 크리스마스 전날이라서 미리 교회 문을 열어놓고 이 작품을 걷어놨던 장막을 펴놨는데 마침 이 네로가 여기를 지나가다가 성당에 들어와서

배고픔과 굶주림 속에서 바로 루벤스의 십자가에 내리심 이 작품을 보게 되는 게 이게 엔딩 컷입니다. 
사실은 이제 화가는 우리는 항상 사후에 평가 받는다고 하고 살았을 때는 불행하다 했는데 그런 어떻게 보면은 이야기랑 가장 반대적이고 화가 세계의 프린스 라고 할 만한 사람이 바로 루벤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상대가 다 유럽의 중요한
왕들 귀족들하고 거래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원래 이제 루벤스는 프랑스에 굉장히 명문 가문 출신이었던 걸로 봤는데요. 
대부분 그림은 어디서 배워오냐면 이제 이탈리아에서 배워오니다. 
팔 년 유학 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돌아와서 자기 작품을 자기가 어느 정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자기 동네 분들에게 과시하는 작품이 바로 십자가에 내리신 이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뭐 어떻게 보면 북유럽 전통의 디테일이나 표현력과 이탈리아 그림들이 보여주고 있는 그 스케일과 모뉴멘탈리트를 멋지게 결합시킨 그런 작품인데요.

이 작품을 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지금 내려오는 그런 모습인데요. 
몸이 굉장히 좋고 근육이 잘 발달한 신적인 몸으로 표시되고 있는데요.

근데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때 어쨌든 굉장히 야윈 상태로 내려왔던 성경이 묘사가 돼 있는데 그거랑 좀 대조적인 것 같아요.

북유럽에서는 인간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을 해서 방금과 같은 표현에 좀 더 주력했는데요. 
이탈리아에서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는 신성함 때문에 굉장히 건강한 남성의 몸으로 좀 그렸는데요. 
이런 것들은 사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부터 오는 그냥 전통입니다. 
지금 라오콘 상이 있는데요. 제가 원했던 거는 이게 이제 쫙 돌면

이거는 일종의 자기 졸업 논문처럼 자기가 이탈리아에서 뭘 배워왔는지를 보여주는 그런 모습입니다. 
이게 바로 이 루벤스의 화풍인데요. 프랑스의 전설적인 어떻게 보면 그 프랑스 근대를 만든 굉장히 훌륭한 왕 중에서 악리 사세가 있습니다. 
분열된 프랑스 사회를 통일하고 종교적 자유도 화하는 그런 노력을 했는데요. 
아깝게 비명해줬고 근데 이 악리사세의 부인이 메디치

가문의 여인입니다. 마리데 메디치라는 근데 이 마리떼 메디치는 남편보다 훨씬 오래 살면서 아들 루이 십삼세의 섭정까지 하는데요. 
메디치 가문 답게 권력욕이 대단했습니다. 
아들과의 어떤 권력 다툼이 굉장히 컸는데요. 
마지막엔 루벤스를 통해서 자기의 일대기를 그리게 합니다. 
이십 편이 넘는 그림인데요. 이 그림 하나가 이렇게 보니까 감이 없으실지 모르는데 삼 미터 사미터짜리 그림이 어머나 그리고 예수님도 아닌데 자기 생애을 스무 편 이상으로 나눌 게 뭐가 있을까요.

진짜 돈 많으셔 과시욕이 대단하네요.
중요한 거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그리는 방식이 신화화하고 거의 믹스 되어 있어요. 
이 장면은 앙리 4세가 아리데 메디치의 사진 면접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초상화를 보면서 흐뭇해 하는 물이에요. 
여기 이 두 명의 사진을 들고 있는 사람이 큐피드

결혼의 신 무겁죠 사랑해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 뭐 이거 결혼이 성사될 게 뻔한 얘기죠 그리고 그 뒤에서 누가 넉넉히 바라보고 계시는 게 제우스가 고민 안 좋다는데

너무 자기 결혼을 신경 쓰시는 거 아니에요.

진짜 약간 자기 중심적이 너무나 큰데요. 
진짜 에고이스트 다 지금 이 앙리 사세의 손을 보면 너무 좋아서 떨고 있어요.


프랑스를 대표하는 어떤 신격화된 인물이 훌륭한 경험이 있습니다. 
라고 귓속말을 해드리고 있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걸 해주니까 루벤스가 그림을 그리면 너무나 기쁜 거예요. 
한 거예요. 이 아름다운 배를 타고 마르세유 항구에 도착하는 그 장면입니다. 
난리 났네요. 자존심이 하늘에서 지금
발레가 울리고 있는데 나팔이 2개를 부르고 있어요. 
가까이 불러
이게 지금 모트 보면 이 하신 거예요. 
바다의 신들이 도와주죠
더 즐겁고 루벤스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이 안 따라가는 화가가 하나 있습니다. 
렘브란트인데요. 자기 자화상의 모습인데요. 
전체적으로 어둡고 빛의 어떤 표현력 같은 경우에는 이탈리아는 안 갔지만 이탈리아에서 그 당시에 무슨 그림이 유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 작가는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을 자기 셀카라고 할까요. 
자기 자화상을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그려나가서요. 
거의 일기에 쓰듯이 이 작가의 생애를 자화상을 통해서 볼 수 있는데요.

이십사세 때 모습하고 죽기 직전에 그린 자화상을 보게 되면 성공한 작가에요. 
아니면은
많이 초라하네요.
그것도 약간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계속 자기 얼굴을 그리면서 그림 연습을

그럴 수도 있을 거다. 제가 하우스포라고는 좀 도발적인 말을 썼지만 이거는 뭐 거의 네 학계의 정설입니다. 
로벤스가 선배 화가가 아랫동네죠 벨기에에서 그렇게 잘나갈 때 그만한 영성을 램브란트가 얻어갑니다. 
젊었을 때 20대 때부터 30대까지 그 당시 최고의 부유한 국가가 네덜란드였어요. 
동양과의 무역 이런 걸 통해갖고 막대한 물을

아 축적했던 곳인데요. 이때 그 주인공들은 루벤스가 상당했던 귀족이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성공한 상인들의 시대가 열렸던 거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감당할 수 없이 보유하게 되거든요. 
보통 그 당시 집이 뭐 천이백 길더였으면 그거보다 열 배 이상 된 비싸니까 어 1만 3천 개더짜리 집을 그 당시 최고의 부유한 동네에 마련하게 됐다. 
또 대출 받아 샀나
대출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하우스 풀어

근데 문제는 십 몇 년 후에 이걸 다시 되파는데 파산이 되게 돼 지금으로 보면은 뭐 억대 연봉의 화가였는데 마지막에 소위 말하면 이 작가의 모든 소유물들이 경매로 넘어갈 때 보면 이상한 것들을 많이 수집하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수집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렘브란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야경꾼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그림입니다. 
이 그림도 사실은 굉장한 반전이에요. 
원래는 이렇게 어두운 그림이 아니었거든요. 
배경이 이거보단 훨씬 좀 밝았고 낮 그림이에요. 
그 물감들이 탁해지면서 지금처럼 어두운 그림이 돼갖고 지금은 야간 순시대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그림은 그야말로 렘브란트가 아 명성이 네덜란드 지역에서 최고를 찍었을 때 그렸던 그림입니다. 
집 한책 가격으로 주문을 받아서 그린 거구요. 
그런데 이게
그룹 초상화예요. 그 당시에 그려진 다른 부대원들 초상화 보면 쫙 늘어져 있거든요. 
쭉 앉아갖고 자기 얼굴 이렇게 이 당시에도 그런 게 일반적인 그룹 초상화였는데 렘브란트는 여기서 대장하고 부대장이 앞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부대원들이 뒤에서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이런 이야기들로 이야기가 있는 초상화를 꾸미고 싶었던 거죠. 
확실히 이 그린 이후에 렘브란트는 그림이 잘 안 팔려요. 
결국은 빚에 쪼들려 갖고 신용불량자가 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림을 팔 수도 없어요. 
그림을 그리게 되면은 정부에서 다 그걸 가져가요 도리어 팔릴 수 없는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시장과 관계없는 자기만의 세계로 이제 빠져들게 되고요 명상적이고 깊이감 있고 인간성이 뚝뚝 묻어나는 그런 그림들이 나오게 됐구요. 
어 지금 그 집은
렘브란트의 개인 미술관입니다. 어떻게 보면 결과적으로 자기가 그 집을 다시 명성으로 되찾은 그런 이야기가 또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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