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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유용한 상식

롤스의 정의론

by 푸른바다99 202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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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의 정의론


 미국인은 대부분 사회 계약에 서명한 적이 없다. 사실 미국 사람 중에 헌법 준수에 동의한 사람은(공무
원을 제외하면) 귀화한 시민, 즉 시민권을 받는 조건으로 충성을 맹세한 이주민들뿐이다. 나머지 사람은
동의하라는 요구도, 심지어 동의하느냐는 질문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법을 준수해야 할까?
그리고 무슨 근거로 우리 정부가 합의를 기반으로 설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존 로크(John Locke)는 우리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고 말한다. 하다못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정부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법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며, 법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마을을 통과하는 행위가 어떻게 헌법을 비준하는 행위와 도덕적으로 유사한
지를 밝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가언 합의에 호소한다. 법은 대중
전체가 동의할 수 있어야 공정하다. 그러나 이 역시 실제 사회 계약의 대안으로 삼기에는 석연찮다. 가언
합의가 어떻게 진짜 합의의 도덕적 부분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미국 정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그는 『정의론』이라는 책에
서,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
이라고 주장한다. 롤스는 이렇게 추론한다. 우리가 집단의 삶을 지배할 원칙을 정하기 위해, 그러니까 사
회 계약을 작성하기 위해, 현재 모습 그대로 한 자리에 모였다고 가정하자. 사람마다 좋아하는 원칙이 다
를 테고, 그 원칙들은 각자의 이해관계, 도덕적·종교적 신념, 사회적 지위를 반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부자이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 있고 인맥이 화려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
다. 어떤 사람은 인종, 민족, 종교에서 소수 집단에 속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타협점을 찾을지 모르겠지만, 타협은 했을 망정 일부 사람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한 교섭력으로 이미 타협점에도달했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사회 계약을 공정한 합의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원칙을 정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자기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속할지 모른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니까 ‘무지의 장막’ 뒤에서,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시적으로나마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한다고 상상하자. 나의 계층과 성별, 인종과 민족,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신념도 모른다. 남보다 무엇이유리하고 무엇이 불리한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야말로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협상에서 어느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합의한 원칙은 공정하다. 롤스가 생각한 사회 계약은 이처럼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언 합의다.


 롤스는 만약 그런 위치에 놓인다면, 이성적이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떤 원칙을선택할지 자문해 보라고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현실에서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사고 실험을 위해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접어 둔다고 가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원칙을 택하겠는가? 우선 공리주의를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모르긴 몰라도 나는 억압받는 소수에 속할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군중의 쾌락을 위해 사자 우리에 던져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완전한 자유 지상주의 원칙을 선택해, 시장 경제 체제에서 벌어들인돈을 죄다 소유할 권리를 인정할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추론한다. ‘나는 빌 게이츠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집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러니 무일푼에다 도움도 못 받을 상황에 놓일지도 모를 제도는
피하는 게 좋겠어.’


<출처: 마이클 샌델 저, 이창신 역, 『정의란 무엇인가』(서울: 김영사, 2010), 197~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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