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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민주화 운동은 광주에서만 일어났는가?>
박정희의 유신 체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를 무시한 상태에서 사회 전반에 갈등을 일으켰다. 이러한 갈
등은 1979년을 기점으로 그 기세가 커졌다. 특히 당시 국내적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희생만을 강요당했던 노동자
들의 권리 요구와 더불어 정치적 민주화 운동의 확산으로 나라 안의 상황이 어려웠다면 나라 외적으로는 석유 파동
과 같은 경제적 요인으로 불안함이 가중되었다.
이 과정에서 1979년 10월 16일 발생한 부산과 마산의 민주화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이 참여했던 부산과 마산의 민주화 항쟁을 부마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며, 이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철저히 탄압하고 진압했다.
이후 10·26으로 유신 체제는 끝났으나 전두환 등의 신군부는 계속해서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으며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
산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신군부는 보도 통제 등으로 국민의 귀를 막고, 5월에 광주와 전남지역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광주와 전남 지역의 국민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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