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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 상식

핀란드의 나토 가입과 러시아의 반응

by 푸른바다99 2022.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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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의 동진을 막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 중 하나였죠. 
그런데 정말 나토가 동진하게 생겼는데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여러 가지로 긴장이 고조가 되고 있는데요. 
독일이 일단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나섰고 또 많은 국가들이 지금 국방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예산을 국방 속에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들려오는 소식이 또 하나 있죠.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건데요. 
사실 이 핀란드가 나토 가입 카드를 만지작거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당시에도 그때도 나토 가입을 한다 만다 이런 얘기가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진지해 보입니다.

올해 6월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있는데요. 
이때 아마 이 두 국가의 나토 가입 여부가 결정나지 않겠냐라는 조심스러운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 얼마나 안보에 도움이 될까 오늘은 일단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핀란드의 총 인구는 약 550만 명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전쟁이 나거나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바로 소집을 할 수 있는 예비군까지 합하면 약 30만 명 병력이 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정말 탈탈 털어서 최대로 모집을 한다 하면 거의 90만 명 가까이 모집을 할 수 있다고 하죠. 
핀란드는 사실 유럽 선진국가들 중에서는 매우 드문 징병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입니다. 
핀란드 남성의 4분의 3 정도가 군 복무를 마쳤다고 하죠. 
안보와 관련돼서 여러 가지 계획들도 짜여져 있습니다. 
적어도 6개월 동안은 버틸 수 있는 곡물이라든지

주요 연료를 비축을 해놔야 되고요 그리고 제약회사 같은 경우는 수입 약품을 3개월에서 10개월 치 정도는 보전을 해놔야 된다고 합니다. 
또 핀란드에서는 일정 규모가 되는 건물들에는 항상 지하에 방공호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되고요 유사 시에는 주차장 아이스링크 수영장 같은 것들이 바로 대피 장소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해놨다고 합니다. 
핀란드는 네셔널 defense cosis라는 것이 있다고 해요. 
1년에 네 차례 모이는 건데요. 주요 기업의 기업인들 그리고 정치인들

교회 성직자들 언론인들 그리고 비정부 단체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그야말로 안보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주로 군 장교라든지 정부 관료들이 와서 안보 교육을 시켜준다고 하는데요. 
지금 현재 핀란드의 안보 상황이라든지 그리고 위기 시에 시뮬레이션까지 함께 한다고 하네요. 
지방에서도 비슷한 것이 이루어지는데요. 
여기에 한 6만 명 정도가
참여를 했다고 해요. 예를 들면 만약에 발트해가 봉쇄가 된다면 식료품은 어떻게 조달할 거고 휴지는 어떻게 만들 것이고 뭐 이런 것들을 시뮬레이션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는 건데요. 
이렇게 핀란드가 안보의 진심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핀란드는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국가죠.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표트르 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보다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와 훨씬 가깝기도 하죠. 
그리고 원래 이렇게 붙어 있는 국가들끼리는 조금 역사적으로 사이가 늘 좋지는 않습니다. 
핀란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죠. 
12세기부터 1809년까지 러시아에 하향될 때까지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보쉬 비키 혁명이 끝나고 바로 적백 내전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러시아에서는 적군이 이겼지만 핀란드에서는

백군이 승리를 했죠. 그리고 1920년 타르트 조약에 의해서 국경선이 그어지고 독립을 하게 됩니다. 
1932년에는 소련하고 불가침 조약까지 맺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1939년 여름이 지나면서 소련 측에서 핀란드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해오기 시작을 합니다. 
당시 레닌 그라드 즉 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핀란드가 영토도 좀 내놓고

국경선도 양보를 하라는 요구를 하게 되는 건데요. 
라플란드라든지 카렐리아 지역의 영토도 내놓고 국경선을 서쪽으로 옮기자라는 거였습니다. 
레닌그라드를 새로 세울 수 없으니까 국경선을 옮겨라 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핀란드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는데요. 
황코항을 30년간 소련에게 조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한코 항은 hasin기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나와 있는 곳이죠. 
핀란드 만에서 발트이로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해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딱 보기에도 매우 전략적인 요충지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소련의 군대가 워낙에 막강하고 그리고 소련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핀란드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핀란드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는 양보를 할 생각이긴 했는데 이 항구 항만은 절대 내줄 수 없다 라고 이야기를 했었죠. 
왜냐하면 소련이 여기에 군대를 주둔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 힘들 것이다라는 것을 핀란드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그리고 이 협상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핀란드 측의 입장은 점점 더 단호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소련은 이미 그 해 여름부터 핀란드를 침공할 계획을 착 세워놓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11월 26일 소련 측에서 카렐리아의 국경 부근에서 핀란드가 소련을 공격을 했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물론 주작이었죠. 그리고 11월 30일 아침 9시 소련군이 헬싱in키 공습을 시작으로 해서 핀란드를 침공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겨울 전쟁이죠. 
사실 핀란드는 이전부터 소련으로부터 크게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노르딕 국가들과 함께 안보 협력을 추구를 하고 있었던 중이었어요. 
근데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주변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을 합니다. 
특히 스웨덴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스웨덴이 절대 들어주지 않았죠. 
스웨덴 입장에서는 당시 서남 쪽의 독일이 굉장히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리고 바로 직전에 소련과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맺었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소련 입장에서는 상당히 마음 놓고 핀란드를 침공할 수 있었고 그리고 스웨덴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이 독일 나지를 굉장히 경계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측에서 핀란드를 도와주겠다라고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마저도 사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영토를 지나갔어야 됐었고

스웨덴이 강경하게 이를 거부를 했습니다. 
길을 내주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당시에 이 폴란드를 나치 독일과 소련이 갈라 먹은 상태였고 또 체코 슬로바키아도 나치의 손에 떨어진 상황이었죠. 
핀란드보다 군사력이 강하다고 여겨진 폴란드라든지 체코 슬로바키아도 버티질 못했는데 핀란드를 도와줄 이유가 있을까 라고 서방 국가들도 생각을 했고 스웨덴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핀란드는 그야말로 고립무원 혼자 싸워야 되는 상황이 됐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용맹스럽게 싸웠다라는 것은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서 침공해온 소련군 앞에 핀란드의 당시 인구는 약 350만 명이 조금 넘었었는데요. 
그 당시 정말 탈탈 털어서 모은 병력이 30만 명 정도 됐다고 하죠. 
무기도 굉장히 열쇠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소련은 당시에 이 남쪽 지역에 핀란드와 소련의 국경 지역의 주력 부대를 배치를 했었죠. 
그리고 핀란드도 자신들의 최고 사령관이고 정말 존경받는 장군이었던 만네르하임 장군의 이름을 딴 만네르하임 방어선을 사수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 핀란드가 정말 잘 싸웠거든요. 
핀란드 영내로 이 소련군을 끌어들인 다음에 제대 간의 연계를 끊어 놓고 그리고 각계의 적파를 하는 방식을 썼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유명한 저격수들이 이 소련군을 저격하는 방식도

썼습니다. h웨라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명저격수가 있었죠. 
소련군 약 259명을 사살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핀란드가 엄청 추웠다고 합니다. 
물론 소련도 추운 국가였지만 그보다도 훨씬 더 혹한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부상을 당하거나 동상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소련군의 사령관들이 상당히 좀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를 두고 스탈린이 그 전에 굉장히 뛰어나거나 자신에게 라이벌이 될 만한

혹은 경계해야 될 만한 장군들을 모두 숙청하거나 처형했기 때문에 소련군의 질이 약간 좀 저하된 상황이었다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봄이 오면서 날씨가 풀리고 그리고 막판에는 소련이 거의 100만 군대를 동원을 했었죠. 
이런 물량 공세를 핀란드가 이겨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3월 12일 모스크바 협정을 맺고 처음에 이야기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영토 즉 핀란드의 11%의 영토를 소련 치게

내어주게 됩니다. 그 이후에 핀란드가 사실은 독일 nah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 나찌와 동맹을 맺고 소련을 공격했던 적도 있어요. 
이게 1941년 6월에 있었던 일이고 사실 겨울 전쟁이 끝나고 1년 밖에 안 된 후에 있었던 전쟁이라 두고 계속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독일이 소련에게 결국 패배하게 되고 또 핀란드는 그래서 연합국측에 다시 붙게 되면서 결국에는 잠시 수북했었던 땅을 다시금 소련에게 넘겨줘야 만 했죠.

핀란드는 대표적인 중립국입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빈 체제가 성립이 되면서 스위스에게 중립국의 위치가 부여가 되면서 국제사회의 중립국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됐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북유럽은 중립국의 위치를 선점한 국가들이 많았죠. 
스웨덴 같은 경우는 자국의 국방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자립적인 중립국이다라고 우리가 분류를 합니다. 
그리고 핀란드는 친소련 중립국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겨울 전쟁도 있었고
그리고 소련에 가장 가깝게 붙어 있었기 때문에 늘 소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당연히 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그리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소련하고는 1948년 핀란드 소련

우호 협력 상호원조조약을 맺었는데요. 
여기서는 상대방을 상대국으로 하는 어떤 안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그리고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는 소련의 군사력에 의존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만 나토라든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담고 있는 전쟁이 났을 때 자동적으로 개입을 하는 조항은 담겨 있지 않았죠. 
냉전 시기에 바로 옆에 붙어 있고
또 겨울전쟁의 경험에 있었던 핀란드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조약이었습니다. 
그래서 핀란드는 마샬 플랜의 혜택도 받지 못했고요 1992년이 되어서야 eu에 가입 신청을 냈었죠. 
그리고 그 당시는 이미 공산주의 사회주의 블락이 무너진 상황이었고 균형의 준은 이미 서방 쪽으로 많이 넘어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을 하고 이후에 가입 신청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협상을 할 때 이번에 핀란드 dization 즉 핀란드화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 이 핀란드 화 하면 뭔가 좀 좋은 것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북유럽에 있는 선진국이고 사회 보장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그러면서도 안보적으로도 탄탄한 중립국 이런 이미지긴 한데요. 
사실 이 핀란드다이제션은 핀란드 국민들이 들으면 조금은 구력적인 단어이기도 합니다. 
원래 뜻이 소련에 의존하고 또 눈치 보던 핀란드를 빗대어서 하는 이야기거든요.

약소국이 강대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을 필란드 izan 합니다. 
이 말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60년대 서독에서 였어요. 
당시에 빌리브란트 총리가 오스트 폴리틱 동방 정책을 펼칠 때 이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이를 빗대어서 핀란드처럼 될 것이냐 라면서 이 필란다이제션

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고요 그리고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당시 키신저와 브레진스키가 우크라이나가 이 핀란드화를 추진해야 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죠. 
정작 핀란드 사람들은 그 당시가 상당히 흑역사였다라고 기록을 하고요 실제로 이 소련에 대해서 반대하는 말을 하거나 했을 때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스스로 검열하며 지냈다는 증언들을 합니다. 
유쾌한 기억은 아닌 것이 바로 이 필란드 ization입니다.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은 하진 않았지만 이 나토 가입국들 그리고 파트너 국가들과 여러 가지 안보 협력을 하고는 있죠. 
당연히 소련이 해체되고 난 다음에 핀란드의 외교 공간이 넓어진 것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핀란드 국민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 왔었습니다.

2017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나토 가입을 찬성하는 핀란드 국민들은 19%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하는 숫자가 52%로 훨씬 높았죠. 
그런데 2022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난 뒤에 했었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핀란드가 나토 가입에 찬성한다라는 여론이 무려 62%로

훌쩍 뛰어 올랐습니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핀란드가 아마도 나토 가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스웨덴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아직까지 좀 시간이 남아 있기는 하고 그리고 가입 결정을 하는 데에는 나토 30개국이 모두 찬성을 해야 되기 때문에 조금 두고 봐야 되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아마도 반대하는 국가는 거의 없지 않겠냐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설사 핀란드가 가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핀란드의 영토 내에는 외국 군대가 주둔하지 않고 또 핵무기도 배치하지 않는 이런 정도의 조건을 내걸지 않겠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이에 대해서 러시아가 굉장히 격렬하게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이 발트의 쪽에 뜬금없이 러시아 형이 있습니다.

칼리닌 그라드죠 여기에 핵무기를 배치하겠다는 이야기를 러시아 측에서 꺼내고 있는데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 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아무래도 요원해 보이죠. 
결국 우크라이나도 점부 점령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히려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을 하는 그러면 러시아는 대체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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