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도네시아 정부는 팜유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국내 가격이 너무 올라서입니다. 야자나무 열매에서 짜낸 기름인 팜유유는 인도네시아에선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식품입니다.
우리도 잘 아는 볶음밥인 나시고랭이나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 중 하나인 미고랭 등 인도네시아 음식의 대부분이 파묘로 볶거나 튀긴 요리입니다.
때문에 휘발유값이 오르는 건 참아도 식용유 값이 오르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에서 파유값 인상은 국가적인 소유 사태를 불러올 수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실 인도네시아는 압도적인 세계 대 팜유 생산국입니다.
세계 수출량의 60%를 차지하지요. 그런 나라에서 파믹 가격이 연초 대비 무려 50%나 올랐습니다.
왜 이런 가격 급등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건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가 팜유 생산 1위국이라면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 쉬운 생산 1위국입니다.
또 다른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는 2위지요.
이 두 나라를 합치면 해바라기 쉬운 전 세계 수출의 칠십오 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의 전쟁 때문에 해바라기 쉬운 수출이 꽉 막혀 버렸죠.
당연히 세계적으로 식용류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인도네시아의 팜유 회사들이 자국 대신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는 해외 수출에 주력하면서 최대 생산국임에도 가격 폭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도 역시 큰일입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식용유 수입국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헤바락 유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파유는 인도네시아에서 조달해왔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힘겹게 사는 인도 서민들이 저 멀리 떨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 정부도 폭동이 일어날까 봐 지금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7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우리라고 이런 사태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수입하는 해바라기 시유의 57%가 우크라이나 산입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전체 식용유 가격은 이미 20%가 올랐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여름쯤엔 거의 두 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치킨 짜장면 파전 튀김 등 기름을 많이 쓰는 음식값이 전방위적으로 오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식용유 사태는 식량난에 비하면 애교나 다름없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1위의 밀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는 5위입니다.
이 두 나라가 전 세계 밀의 30%를 책임지고 있고
옥수수도 19%나 됩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식량 가격은 전쟁 이후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습니다.
오랜 내전에 시달려온 시리아는 러시아의 밀지원이 끊기면 1천만 명 이상이 당장 굶주릴 판입니다.
밀 공급의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해온 이집트 역시 갈등의 불이 떨어졌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아직 없습니다.
코로나 19로 관광산업이 무너지면서 인구의 80%가 빈곤층이 된 레바노는 이 두 나라에 대한 밀의존율이 무려 95%나 됩니다.
이렇듯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이웃한 두 나라 간의 단순한 전쟁이 아닙니다.
정말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이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앞에서 식용유와 미의 두 가지 예만 들었을 뿐 석유 가스 반도체 핸드폰 자동차 등 거의 전 분야가 이 전쟁으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금 나라별로 철저히 분업화된 소위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원에 대한 상호 의존도가 사상 유례없이 높아 이젠 지구상의 작은 국지전조차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큰 희생이나 전쟁의 승패 따위엔 사실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과연 이 전쟁으로 30년 이상 지탱해 온 세계화라는 경제 질서가 정말 끝장 날 것인가에 쏠려 있습니다.
세계화는 단순화시키면 가장 값싼 곳에서 물건을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해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것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적군이든 아군이든 상관없지요.
효율성을 최고로 치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질서 이게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18세기 영국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라별로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더 적게 드는 제품에 특화하여 교역하면 서로 이익이 극대화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200년도 넘은 이론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현실화할 수 있었습니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비교 우위인 에너지와 원자재를 맡음으로써 세계 경제 시스템이 한 축이 된 것입니다.
세계화를 상징하듯 미국의 맥도널드가 러시아에서 문을 연 것도 이때쯤이죠.
여기에 2001년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세계와는 날개를 달았습니다.
중국이 자신들의 비교 우위인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세계의 공장 역할을 맡은 거죠.
이렇게 세계는 연구개발은 선진국이 생산은 개발도상국이 맡는 지금의 글로벌 분업 체제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업들은 인건비와 원자재 값이 싸다면 세계 어디든 공장을 세워 이익을 늘렸고 지속적인 단가 하락 덕에 세계는 인플레이션 없는 장기 성장을 누렸습니다.
사실 우리를 포함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도 이 덕을 많이 보았죠.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이 예상보다 너무 빨리 너무 커졌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지 단 10년 만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제조업의 30% 가까이를 차지하죠.
중국은 2008년 미국의 리먼 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사실상 구원하면서 명실상부한 지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계 경제의 설계자가 되려고 합니다.
이걸 용납할 수 없는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고 이때마다 중국은 경제 보복으로 맞대응하면서 2010년대부터 세계화는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세계는 코로나 시대를 맞았죠.
중국을 포함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나라들이 대거 봉쇄에 나서면서 대규모의 공급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위기 시 분업파딩 글로벌 공급망이 전혀 작동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싼 것만큼이나 안정된 공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것이죠.
이렇게 세계화가 위태해진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관련 전문가들은 이 전쟁을 세계화에 날리는 결정타라고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턱밑까지 다가온 나토 확장에 대한 경고라고 하고 서구는 세계화의 밑바탕인 상호 실내 위반이라고 합니다.
이에 러시아는 유럽의 아킬레스건인 에너지로 협박하고 있고 서구는 경제 제재로 맞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화에서 맡은 역할 즉 에너지 곡물 원자재 등의 공급 기능은 완전히 정지되었습니다.
그럼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까요.
이미 강대국에선 다른 나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로 진출했던 기업을 하나 둘씩 자국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죠.
하지만 한 나라에서 모든 걸 생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믿을 만한 동맹국들끼리 뭉쳐 경제 블록을 만들 것이란 예측이 가장 많습니다.
미국은 무엇보다 중국을 자꾸만 강하게 만드는 지금의 경제 체제를 해체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도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블록을 만들게 되겠죠.
여기에 서구 세계로부터 미운털이 바뀐 러시아가 당연히 합류할 것이고요 그야말로 신냉전 시대입니다.
공교롭게도 냉전 해체를 상징하던 맥도널드가 최근 러시아에서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어쨌든 이 두 나라만 해도 세계 경제의 20% 규모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독주를 늘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도와 브라질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 상당한 규모의 경제 블록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둔 64개국 중에서도 중국 측에 합류할 나라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세계화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중국이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과연 버리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미국은 분명 엄청나게 큰 양보를 요구해올 것입니다.
과연 중국이
그 굴욕을 받아들일까요. 미래의 경제 체제가 무엇이 되건 세계화의 위기는 우리의 위기입니다.
새로운 경제 질서가 자리 잡힐 때까지 무역의 위축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블록으로 나눠지는 것도 우리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겐 좋을 리가 없습니다.
경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장기적인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도 풀기 쉽지 않은 난제입니다.
뭐가 되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터인데 우리 정치인들이 이를 잘 풀어갈 실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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