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혼란스러웠던 일본의 전국시대 말기 일본 열도에서는 잘게 쪼개진 각 세력들 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수백 명의 영주들이 활개치고 있었고 서로 일본 열도를 통일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력했던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 그는 뛰어난 리더십과 타고난 전략적 재능으로 권력을 손에 넣은 후 전국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하지만 전국 통일을 바로 앞에 두고 자신의 부하였던 아케치 미치 의대의 배신으로 허망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혼노지의 변이죠. 오다 노부나가는 현재도 일본에서 위대한 영웅으로 순위권에 꼽히고 있고 반대로 아케치는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모반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최고 권력자 오다 오브나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문의 분열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왕자의 자리가 공석이 되자 너도 나도 이 자리를 탐하기 시작하는데 그중에서도 감추었던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도유트미 히데오이었습니다.
히데오신은 미처남 평민 출신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악착같이 올라온 인물입니다.
후에는 오다를 섬기는 최측근으로 활동하며 오다 가문 안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냈죠.
그리고 뛰어난 지휘관으로 성장한 히데오시는 때마침 오다가 죽자 그의 가문을 격파하며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1590년 급기야 히데요시는 오다 오븐나가가 거의 다 만들어 놓은 전국 시대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100여 년간 혼란에 휩싸였던 일본 열도를 통일합니다.
이때 조선에서는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였는데 사실 이것은 단순히 통일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교륜 관계를 나누면서 혹시 모를 일본의 군사적 위협을 사전에 파악하기 위함이었죠.
통신사로 파견된 사람은 황윤길 김성일 허성이었습니다.
히데오신은 조선 통신사들에게 굉장히 무례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명색이 국가와 국가 간의 정식 외교 회담인데 아들인 츠루마츠를 안고 오는가 하면 조선 국왕인 선조를 낮춰 부르기도 했으며 통신사를 대접하는 음식과 식기도 매우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데려온 아들 츠루마채가 오줌을 지리자 히데오시는 호탕하게 웃으며 사절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옷을 갈아입히러 가는 등 도저히 공식 외교 석상 자리라고는 볼 수 없는 행동들을 저지르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전국시대를 통일한 히데오시지만 그는 아직 이 넓은 영토를 모두 통제하기에는 권력이 부족했습니다.
수도 교토는 장악했어도 사실상 각 지역에서는 다이미라는 권력자들이 실권을 쥐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의 평생의 라이벌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동북 지역의 영주로 건재하던 상황이었죠.
이에 반해 히데오씨는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지지 세력도 매우 약했고 권력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가 언제 또 뒤집혀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다 오브나가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꼴이 된 히데오 씨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했습니다.
오늘의 부하가 내일의 적이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으며 히데오씨 또한 현재의 위치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히데요시는 영주들의 충성을 휘어잡을 만한 확실한 업적이 필요했는데 그렇게 그는 대륙 정복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명나라와 조선을 굴복시키고 광활한 영토를 손에 얻음으로써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처음에는 단순한 망상인 줄 알았으나 히데오시의 생각은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1585년부터 명나라 조선을 포함한 대륙 정벌을 위해 치밀하게 전쟁 준비를 시작합니다.
당시 오다 노부나가 와도 친했던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쓴 일본사에 의하면 도유트미 히데요시가 이 정도의 권력을 얻었는데 커다란 업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지금 가진 권력을 조만간 잃고 말 것이다 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의 말로 짐작해 보았을 때 히데오시가 조선과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하나의 정치적 퍼포먼스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데요시의 이러한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될 것임이 드러나자 일본 영주들은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강대국인 명나라와 맞선다는 그의 터무니 없는 야욕에 수많은 영주들이 반대했지만 아무도 히디우시의 야심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히디우시는 혼란스러운 정국 시대를 통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국에 여전히 독립국처럼 존재했던 각 지역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상당히 고뇌했는데 조선과 명나라를 점령만 한다면 그 영토로 나눠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전쟁 준비를 설득했습니다.
히데오시는 사람을 다루는 데 능한 임기응변의 귀재였고 오다 휘하에서 군사적 능력을 입증한 뛰어난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영주들은 그의 추진력에 딱히 반발을 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침없이 추진하던 히데오시에게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숙명의 라이벌 도구가와 이에야스였습니다.
과감했던 히디오시와는 달리 신중하고 침착한 성격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때까지도 히디오시에 곱하지 않는 거물 영주였고 간토 지방을 거점으로 히데오시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인물입니다.
때문에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전쟁을 하러 가는 동안 이에야스가 그 틈을 노려 수도 교토를 침공할까 항상 걱정했습니다.
권력을 더 확고히 잡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 전쟁 때문에 이에야스에게 자리를 뺏길 수는 없었죠.
그렇게 전쟁이 치러질 동안 이에야스를 묶어둘 명분이 필요했던 희리오 씨는 그를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누이 동생을 이에야스에게 시집 보내고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마저 인질로 보내면서 이에야스와 암묵적인 휴전을 맺는 것이었죠.
이때 시집을 간 누이 동생은 이미 가정이 있었는데 이에야스와의 결혼 때문에 남편과 강제로 이혼을 해야 했습니다.
이렇듯 히데오시는 이에야스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충격적인 방법을 사용했고 결국 이에야스는 히데오시의 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가장 큰 견제 세력을 묶어둔 히데오시는 본격적으로 영주들을 통합해 조선 침공을 준비합니다 한편 조선에서도 일본의 침략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과거부터 히데오시가 노골적으로 조선 침공을 예고했으며 그동안 외적들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에 남쪽 지방에서는 지속적으로 경계를 강화해 왔었죠.
특히 일본의 통일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통신사들이 파견됐을 때 이들은 히데요시의 명나라 침공 계획을 듣게 됩니다.
이들은 조선으로 귀국하자마자 이 정황을 당시 조선의 왕 선조에게 보고하는데 황윤길은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히데오시의 눈빛은 반짝 하여 지략이 담겨 있는 듯하다고 보고했고 김성일은 전쟁 가능성은 낮고 히데오시의 눈은 쥐새끼 같으니 우리가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러한 엇갈린 보고에 선조가 김성일의 말을 들어주면서 조선은 본격적인 전쟁 준비를 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게 되죠.
하지만 이때 황윤길의 말을 듣고 제대로 전쟁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이미 7년 전부터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했던 일본군의 초기 진격을 막아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이 절대 두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국의 유능한 장군들을 남쪽 지방에 배치하기 시작했으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성을 보수하거나 다시 축성했습니다.
이렇게 조선은 나름대로 왜군의 침입에 대비했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왜군의 규모입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혼란스러운 정국 때문에 약 150년간 통신사를 보내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따라서 외군의 규모가 얼마인지 전투력은 어느 정도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국 시대의 경험으로 인해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이 최대치에 달했고 수많은 전투를 통해 습득한 체계적인 전략 전술이 절정에 다달았습니다.
특히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지식화한
조총이라는 신무기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순수하게 전투 능력으로만 봤을 때 당시 일본군은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몇 년 전부터 조선 팔도 곳곳에 심어놓은 첩자들의 활동으로 이미 조선군의 상황을 손바닥처럼 꿰뚫고 있었죠.
운명의 1592년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은 마침내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정의 전투 부대만 14만 명 예비대를 포함한 20만 명의 대규모 원정군이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으로 조선을 향해 출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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