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같은 게 있나요.
이병헌 이병헌 그 영화가 천만 관객 이상 동원을 했으니까 당연히 그 이병헌 씨 이미지가 뜨겨나온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헷갈려요.
광이하고 미스터 선샤인이 똑같은 사람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근데 이건 아니건 이건데요.
거기 일제 시대잖아요.
영화 광해 나온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에요.
그래서 일단은 기본적으로 팩트도 있고 사실은 허구적 상황이 되게 많아요.
가장 큰 허구가 뭐냐 하면 이 영화를 보면은 광해군이 십오일 동안 실록의 기록이 사라졌다.
뭐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우리 지금 현재 남아있는 승정원 일기는 인조 시대인 1623년부터 1910년까지 기록만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이거 자체가 사실은
픽션이었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서 전개되는 뭐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광해군이 상당히 개혁적 성향을 지닌다라든가 또 외교에서도 능동적인 자세 이거는 상당히 또 팩트에 가까운 부분이에요.
이런 어떤 이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비교하면서 또 영화를 보는 것
되게 잘 섞었네요.
이게 그러니까 이 영화나 드라마가 팩트만 가지고 만약에 만든다면 사실은 거의 성공할 드라마는 없어요.
광해군을 비롯해서 광해군이 왜 또 표출이 되는 그런 어떤 시대적인 여건이라든가 이런 것까지 함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름이 이혼이에요.
인격 서부터 이제 제가 보여드리는 성명이 이혼이에요.
좋지 않은데요. 1575년생인데 요거까지는 아마 다 모르실 거예요.
연상군은 지난주에 배우셨지만 천사백칠십육 년생이에요.
두 사람이 정확하게 구십구 년 차이 났다.
이렇게 기억을 하시면 나중에도 이게 좀 기억하기가 좋다.
연산군은 십 대 국왕 광해군은 십오대 국왕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버지 선조 선조 그리고 어머니가 이 궁빈김씨에요.
그 어머니가 선조의 후궁이었어요. 후궁 그 후궁을 우리가 공빈 이렇게 예 후궁의 최고 풍계가 빈이 되는 거예요.
후궁도 우리가 보면 이 등급이 있다고 그랬어요.
빈 빈 소의 수기 소용 수용소원 수원 최고 등급이 빈이에요.
빈 빈 자 최고 등급인 빈 들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 아들을 아들 그렇죠 아들을 남기고 선주
적장자는 그러면 이매군
선조의 적장자는 없어요. 왜 없어요.
첫 번째 왕비가 의인왕후 박씨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자식이 없어요.
이때 대개 총애를 받았던 후궁이 공빈 김씨예요.
이 공빈 김 씨가 낳은 아들 맞아들이 이해고 그래서 그 형이 되는 거고 두 번째 아들이 광해군
적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니고
적자도 아니고 장자가 아니죠. 광해군은 그러니까 일단 서자에서도 두 번째 차나 바로 이런 어떤 좀 콤플렉스 같은 게 결과적으로 그 동생 영창대군이라고 있죠 네 영창대군는 임목 대비가 개비로 들어온 후 이후에 낳은 아들이거든 영창대군은 말 그대로 접창자예요.
그러니까 이 영창대군하고 상당히 나중에 갈등을 겪게 되고 광해군이 이제 그런 어떤 그 어릴 때도 세자로서의 아주 영특감이 있었다라는 거를 이제 보여주는 그런 일하죠.
그 세자 시절부터 뭔가 이렇게
자질이 남달랐다. 그래서 이 광해군은 바로 젊은 어렸을 때부터 뿐만이 아니라 청년일 때 이때도 임진왜란이라는 상황에서 정말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 임진왜란 때 광해군의 나이가 열여덟 살이었어요.
열여덟 살 어리다 그렇죠 되게 어리죠 지금 같은 고등학생 정도 되는데 소위 말하는 그 분조 활동이라 그래가지고 실제 전선에 이제 뛰어드는 바로 그런 모습
정말 솔선 수방하는 거는
훌륭한 덕목 아닙니까 이
이때 광해군이 이때까지도 세자로 책봉이 안 돼요 세자가 아니었어요.
우리가 보면 조선 시대 이제 세자로 책봉되는 경우는 보통 나이가 10세를 전후한 시기 좀 빠르면 한 일곱 여덟 조금 늦어도 한 십 대 초반에 세자로 책봉이 되가지고 대체적으로 한 세자로부터 세자 수업을 한 이십 년 정도 받아요.
그러면 보통 한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 되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왕이 되셔서
대체적으로 왕으로서 한 또 이십 년 제의하시다가 사십 대 후반 오십 대 초 이렇게 돌아가신 게 한 사이클이 선조 같은 경우는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계속 미뤄요 그 중요한 이유가 일단은 의인왕후 박씨에게서 자식을 못 봤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적자에 대한 욕심이 있는 거예요.
적장자 욕심이 있고 공동김씨가 광해군 낳다가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해 버려요.
사망해버리고 그 당시에 선조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다른 후궁이 나타나는 거 인빈 김씨라는 여인인데 요 인빈 김씨가 낳은 아들 중에 신성군이란 아들을 상당히 또 이뻐했어요.
음 결국은 광해군이 세자가 책봉되는 기회가 된 게 결과적으로 임진왜란 임신 이 천오백구십이년 이제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또 나라가 엄청나게 이제 위기에 빠지잖아요.
임진왜란이 사실 기회
결과적으로 광해군에게는 기회가 되는 거죠.
4월 30일 날 선조가 그 밤에 우주 우주를 향해서 원래 처음에는 평양까지 피난을 갔어요.
평양으로 피난을 갔다가 그리고 이 평양마저도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가능하면 저 중국 여차하면 중국 쪽으로 가겠다.
이런 의도에서 제일 국경선이 있는 우주까지 피난을 가는 그 과정에서
나는 진짜 나이도 많고 이러니까 조금 안전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이때 광해군을 정말 마지못해 세자로 책봉을 해서 왜냐하면 왕실이 꺾이면 안 되니까 그러면서 광해군을 정말 극한 체험을 하게 그런 과정에서 사실 광해군의 인기가 폭발해요.
워낙 이제 의병들 모으고 이러니까 이 젊은 왕세자가 그래도 그래도 어떻게든 나라에 이렇게 구하겠다고 나서니까 이 조정에 이
망이 확 몰리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서 사실은 광해군의 어떤 세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는 뭔가 이런 전시에서 이런 여러 가지 좀 국난을 극복했던 이런 경험들이 결과적으로 광해군이 후대의 정치를 펴는 데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리고 이 상황에서 임진왜란 때 선조의 가장 뭐 이제 기대주였던 이 신성군이라는 그 왕자가 사망을 해요.
이것도 이제 결과적으로 광해군의 입지를 이 무렵 됐을 때는
선조 입장에서는 광해군이 세자로 나가는 이 상황에 대해서는
싫은데 이러면
명군내
명문일 수도 있는
그런데 이제 이런 세자의 모습이 선조는 그렇게 탁탁치 않았을 거요.
우리 친잖아요. 아들 자기 아들인데
이제까지 얘기를 들어보면 속이 아주 좁아서 아들한테도 아주 질투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때쯤 되면 선조가 여러 차례 이제 전이 파동을 일으켜 이 전의 파동이라는 건 뭐냐 하면 내가 이제 좀 뭐 나이도 많고 이러니까 이제 왕으로서 하는 것보다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한다 이랬을 때 모범 답안이 뭐죠
아 이게 이제 정말 신하들이 정말 한결같이 아니 되옵니다.
옹촉하여 주시옵소서 계
신하들과 자기 자식을 떠보는 거네요.
계속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는 거예요.
계속 이런 이야기
19번
19번이 기록이 된 것만 해도 그리고 이때 또 되면 명나라가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한다는 또 이런 문제 때문에 상당히 또 이제 조정이 시끄러워요.
명나라는 또 왜 그러니까 이 세자 책봉도 사실은 뭐 지금 시각에서 보면 좀 슬픈 일이지만 일단 그 당시에 그 황제국인 이 명나라의 결제를 받아야 돼요 그래서 이때 신하들은 그래도 집요하게 어쨌든 명나라의 세자 책봉을 그 허락을 받아야 된다 이러니까 이제 선조가 또 화를 내요.
왜 화를 내느냐 하면 이때 또
공교롭게도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에 선조의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가 돌아갔어요.
돌아가십니다. 너희들 왕비 자리가 비었는데 개비 맞이하자는 소리는 한 번도 안 하면서 자꾸 왜 강해군 세자 책봉만 서두르냐 이러면서 대신들을 크게 나물아요.
너희들 나보다 광해군한테 더 관심이 많은 거니 뭐 그렇죠 그런 거 진짜 철없다.
결과적으로는 이 인왕후의 삼년상이 끝나자마자 천육백이 년에 맞아 선조가 이제 소위 말하는 재혼을 하죠.
케이비를 맞이합니다.
아니 세자 책봉이 더 중요한 거 아니에요.
지금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사람이 그
이렇게까지
거짓말 같은데 선조가 1602명 그때 나이는 이제 선조가 51세 그때 개비로 맞이했던 임목 왕후는 열아홉 살 결국 서른두 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또 본인이 이루어집니다.
강현군 입장에서는 세자로 안정적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고 본인이 또 후사를 보는 거 상황은 기분이 안 나빴을 수도 있는데 세자도 안 해주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새 엄마로 들어오고 이건
근데 더 문제는 그 새 엄마가 아들을 낳아버리면 적장자가 돼버려요.
이 나이에 근데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천육백육 년에 바로 그 영창대군이 출생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명나라의 허락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조선에서는 세자 책봉이 이루어졌는데 네 이제 영창대군이라는 새로운 정말 다크호스가 나타난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때 또 다 이런 게 우리 정치권에서 판세가 확 달라지는 게
광해군 편에 줄을 섰던 이 사람들이 다 돌아가 이제 저 쪽으로 막 가는 거예요.
영창대군 쪽으로 그러면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해야 됩니다.
또 이런 목소리까지 나오는 거예요. 아
진짜 나 같아도 삐뚤어지겠다.
광해군을 세자로 끝까지 세자로 책봉해야 된다 세자로 지위를 확보해야 된다 이런 사람들을 큰 대자를 써서 대북 그리고 이제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요 세력들을 소북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소북 이해가 되세요.
정말 유영경이라는 사람이 영의정이 되는데 이 사람이 소북의 핵심이에요.
소북의 핵심을 영의정으로 요즘 으로 지면 국무총리로 임명했다라는 거는 선조가 나는 확실하게 소국에게 실어 줄 거야 아이고 이렇게 됐고
그때 이 대북의 핵심 인물이 누구냐 하면 바로 정인홍이라는 인물이에요.
들어보셨나요. 이 광해군의 정말 남자예요.
광해군의 평생을 광해군을 위해서 살아갔던 임진들한테 무병장으로 아 진짜 최고령 의병장 최고령 의병장이었고 막판에 유연경이라는 인물이 자꾸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하니까
정인홍이 정말 그 당시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탄핵 상수을 올렸다.
위연경을 탄핵하는 저 사람 그 관직에서 쫓아내야 된다 총리에서 그런데 이때는 선조가 완전히 영창대군에 꽂혀 있을 때니까 바로 정인홍이 유배를 가요.
그거는 광희한테 되게 상처였겠어 상처가 됐죠.
광해군도 되게 따랐을 텐데 이분은
그렇죠 근데 이제 결국은 또 반전이 일어나요.
천육백팔 년에 선조가 사망을 내요. 천육백팔 년인가 잘 아까 기억하시면 영창대군이 천육백임년생이니까 세 살이에요.
세 살이야 이 선조도 아직까지 그 공갈 저꼭지 빨고 있는 사람한테 저 왕이
너무 어리다라는 거예요. 원래 했던 대로 광해군이 나의 후계자가 되도록 한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 그 핵심 신화들을 불러가지고 정말 저 영창대군을 잘 보호해 달라 자기도 선조도 약간 감 잡는 거예요.
이 정말 왕이 되신 분쟁 같은 거 또 이 영창대군을 광해군이 어떻게 할까 이런 것에 대한 보호했나보다 부담이 있었다.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까 근데
소방사들한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불등이
요즘 싸는 거지 그래서
완전히 형세 역자 소파
유배되었던 정인홍 컴백이 이제 유영경 바로 처형 이렇게 되면서 완전히 정국이 아끼면서 이제 광해가 선조의 승하고요 솔직히 5대 왕 선생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얘기 들어보면 당연히 포근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데요.
다 나 등치고 도망쳤던 놈들 막판에 결국 내가 왕이 됐으니까
어떤 고난의 고난과 실연의 그렇지 시간을 내가 이제 견뎠다 얘가 왕이 됐다.
군은 그러나 즉위 이후에도 상당히 잘하는 정책들을 많이
광해군이 가장 필요했던 정책은 뭐냐 하면 임진왜란이 끝난 후 그때 아직 10년밖에 안 돼요 아 전란의 어떤 후유증 같은 게 이런 게 아주 심할 때예요.
그러다 보니까 막 토지대장도 사라지고 이러다 보니까 대동법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대동 대동법 들어보셨나요. 아 이 대동법의 핵심은 뭐냐 하면 조선시대 백성들이 부담해야 되는 가장 큰 세금은 일단 토지에 내는 세금 전세
그 다음에 군역의 부담이 있어요. 군역의 부담 그 다음에 또 하나가 특산물을 세금으로 받아 지역에 영덕 같으면 대개 양양의 송이버섯 영광의 굴비 천안에 호두
광의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에서도 사실 이 대동법 문제가 상당히 핵심적인 모습으로 기억하시죠 곡물이라고도 하는데 이거를 이제 이 바쳐야 되는 거예요.
세금으로 바치는데 이 특산물에는 함정이 있어요.
뭐냐 하면 일단은 그게 항상 생산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는 그걸 부담하는 게 너무 이제 힘들어요.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박나인이라고 해서 중간에 이거를 사서 일단 대신 바치고
그 대신에 이 폭리를 취하면서 그만큼의 비용을 내고 하는 거예요.
지금의 약간 고리 대금업장 고리 대품없잖 이렇게 해서 대용법의 핵심이 뭐냐 하면 쌀로 하자 쌀로 하면 이게 큰 문제가 없잖아요.
이게 거의 이거는 일정 정하죠. 일정하죠.
거기다가 또 중요한 게 뭐냐 하면 누가 단위가 그때는 코벨부가해요.
코벨부가 집집마다
그러니까 아주 큰 양반집도 똑같이 아주 가난한 서민도 똑같이 이해가 되세요.
그러니까 이걸 어떤 식으로 바꾸느냐 하면 대동법의 핵심은 이거를 토지 결수가 나와 토지 결수 그러면은 땅이 많은 사람들 지주들이 부과가 많겠죠.
부담이 많고 이 땅이 없는 사람은 안 내도 되는 거예요.
상당히 합리적인 그러면 이렇게 합리적인 제도를 왜 안 했지
배를 불렸겠죠. 지금
지주들이 대부분 관료란 말이에요. 전국에는 다 이게 확산되지 못하고 경기도에만 실시가 돼요.
시범 실시 그런데 이것도 되게 중요한 거예요.
그 몇백 년 동안 못해왔던 이 세제 개혁을 그래도 광해군 때 했다라는 것 자체가 이게 상당히 의미가 있다는 거 해
내가 지기를 하고 나서 바로 자기를 반대했던 사람들을 처단하고 뭔가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복수에 이제 뭐 칼을 들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백성들의 살림을 굉장히 지금 신경을 쓰고 있는
그렇죠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약간 그거 있잖아요.
임진왜란 때 내려가서 이제 백성들의 얘기를
삶을 봤으니까
그렇지 이게 문제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왕인 거죠.
사실은 좀 안타까운 정면은 실제 실록의 기록에서는 화해운이 아주 저렇게 적극적으로 대동법을 실시하는 게 아니라 대동법의 실시를 주장하는 이원익이라든가 이런 관료들이 더 이제 중심이 되었고 물론 광해군도 결과적으로 실시를 허락하는 걸로 봐서는 광해군이 어떤 개혁 성향이 있다라고 보는데 정말 영화 예술처럼 아주 통쾌하게 막 대신들이 반대를 다 누르면서
대동법을 실시하겠다. 이렇게는 하지 않았다라는 거 그리고 이제 반대파들까지 처음에는 끌어안아요.
대표적으로 이 광해군 때 영의정이 되는 사람이 이원익이라는 인물인데 광해군은 대북 정권의 지원 속에 왕이 됐잖아요.
네 근데 이원익이라는 인물은 나인이에요.
나인 나인 정승이었고 이원익이란 인물이 대동법을 실시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그 큰 역할을 해요.
이 선해청을 설치한다라든가 그래서
정책적으로 서로 연정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광해군도 바로 이원익이라는 인물이 그런 측면을 보고 이제 한다는
광의 좋은 이야기만 계속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진짜 계속 들으면 들을수록 광해가 잘한 일이 너무 많은데 어쩌다가 폐위된 건지 이제는 말씀해 주세요.
이제
알고 싶다. 바로 이제 광해군이 소위 폭군으로 가는 길 홍군으로 가는 그 길을 이제 한 번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거 재미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사건이 1613년 이때 개축년이라고 해서 개축옥사라고 합니다.
지금의 문경세제 아시죠 문경 세제 문경세제에서 은상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요즘으로 치면 저 은행 금고가 틀린 거예요.
어머 강도들에 의해서 네 근데 그때 이 주도했던 강도들을 나중에 잡아보니까 일곱 명의 서울들이 주도했다 해서 칠서 지옥이라는 이런 표현을 써요.
일곱 명 서울들이 일으킨 목사 이런 뜻인데 이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진술이 밝혀져요.
우리는 이 거사 자금을 확보해서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였던 인목대비의 아버지죠 김재남이란 인물이 중심이 되어가지고 영창대군을 왕으로 올리려고 했다.
완전히 역모 사건으로 비하가 되는 거죠.
오 그럼요 그렇지 않나요. 여기에 연루되었던 인물들 뭐 김정남 같은 이런 인물들이 대거 처용당하고 바로 이 사건에 그 결과적으로 화살은 결국 누구한테 돌아가요 영창대 바로 이 영창대군 그러니까 이 살아있는 적장자의 존재라는 것은 이 영창대군이 있는 한 항상 이런 제이 제삼의 역모가 또 있을 수 있다.
몇 살 때 영창대 영창대군이 이리 나이로 7살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는데 골방에 갇혀 가지고 네 이곳에 불을 떼는 거예요.
사 들 방이에요. 그래서 기록에도 증살이라고 하나 증살 그거 너무 잘 영창대군이 정말 잔인하게 처형을 당해 이거는 누가 봐도 이 정권에 의해 기획된 죽음이다 이때 되면 광해군에게도 소위 말하는 연산군의 임상에 버금가는 이런 간신히 나타나
끼가 보이는 게
이이 이이첨 들어보셨죠. 대북 세력이라는 이 소수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려면 이들이 결집을 해야 돼요 그러면 뭔가 자기들이 왕권하고 이렇게 연결되는 이런 모습을 보여야 된다라는 거요.
자 그러면 이렇게 영창대원의 어떤 이 죽음에 대해서 제일 붕괴할 사람이 누구예요.
어머니죠.
법적으로는 어머니의 아들이지만 이건 그야말로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진짜 원수가 돼 버립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럼요
원한이 너무
깊어 양립을 할 수가 없죠. 광해군이 지금의 덕수궁 덕수궁에 이제 가면서 그 인목대비를 그대로 두고 바로 그냥 혼자만 오는 그러면서 이곳에서는 요즘 표현을 하면 전혀 지원을 안 해줘요.
그때 임목 대비하고 그 딸이었던 영창대군의 누나 정명공주가 거기 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 사건을 우리가 서궁 유패라고 합니다.
유 그 당시에 여기를 서쪽에 있는 궁이라는 뜻으로 서궁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거죠.
그렇게 되면 네
신하들이 보통 이거는 도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라고 반대를 그래서 이 영창대군의 죽음은 워낙 기습적으로 죽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인복 대비는 오랫동안 유패 있으니까 여기에 대해서 계속 이제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 결과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이 과정에서 다 버리게 되다.
아이고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진짜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되네요.
영창 대군 죽이고부터 이 중에 모든 분란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하나로 본다면 왕통에 대한 집착 내가 이 왕인데 나에 대한 지지를 하지 않는 이런 세력들에 대해서 내가 확실하게 이건 나의 본때를 보여준다 그거는 초반에 했던 개혁 세력과는 별개로 그래서 그런 비슷한 패턴이 사실은 이 폐모살제의에도 전개가 돼요.
또 왕이 또 보하는 또 오류 중에 하나가 이 미신 좀 약간 풍수지리 이런 데 또 빠져요.
정도에 빠지듯이 그러다 보니까 이번에는 또 광해군이 뭐에 집착하느냐 하면 이 궁궐을 건설하는데 아이고 아주 또 우리는 궁궐 건설이 무리한 통합 공사 이것도 이 폐군이 되는 지름길 뭐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또 이때도 술사 말을 믿는 거예요.
이 술사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냐 하면 지금의 이 세문한테
이곳에 또 왕기가 들어있다. 왕의 지운 그러니까 여기에 궁궐을 지어가지고 그 기운을 억눌러야 된다 이렇게 되는 거죠.
어느 궁궐이 원래 세워졌느냐 하면 그렇죠 지금 정리에 있죠.
그런데 그게 바로 그렇게 해서 세운 궁궐이에요.
아 원래 그 광해군 때 세웠을 때는 경덕궁인데 이건 정말 술사가 어떤 면에서는 귀신같이 맞춘 거예요.
이 세문 안에 누가 살고 있었느냐 하면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살고 있어
결과적으로 정원군의 아들이 왕이 됐으니까 그 수사가 정말 귀신같이 바친 거 아닌가요 참 문제가 있었던 거는 인왕산 자락에 인경궁이라고 정말 기록에 보면 거의 경복궁의 열 배 정도 규모를 지었다.
이렇게 나와요 지
지금 없잖아요.
지금 없죠. 그래서 이게 지금 그 군가를 짓다가 광해군이 쫓겨나니까 여기에 그 공사에 그 뭐 이제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그 공사에 이렇게 활용되었던 뭐 목재라든가 건물들 일부는 바로 창덕궁이라든가 창경궁 중건하는데 활용이 됐다.
인경궁은 전혀 살아있는 거죠. 그래서 이거 혹시 예전에 아마 이
그때 저희가 유홍준 교수님한테 배울 때요 천기화를 선정전 복원에 사용했다고
그렇죠 참 가 보시면 유일하게 파란색으로 기와 지붕이 돼 있는 건물이 선정전구니다.
특히 앞에 기억나시나요. 아까 광해군의 취미 중에 아까 등장했죠.
아
그래서 중국 같은 데 가서는 그거 꼭 뭐 수입해 오라
이런 사람이 색깔 이런 거에 집착하고
그래서 이거를 사용을 했을 때 그중에 일부가 지금 선정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지금 하는 사람이 크게 보고 있는 거죠.
광해군이 이런 무리한 토목 공사를 하다 보니까 이런 막 여러 가지 그 당시의 상황을 정말 어떻게 보면은 풍자한 이런 용어들이 많이 생겨나요.
또 나오나 이 대표적으로 오행당상이라는 이런 말이 나왔거든요.
몰라요 재료로
물 물 나무 쇠 흙
건축 재료 아니요.
그러니까 뭐 짓는 데 사용될 수 있다.
흙을 짓는데 흙을 제공하는 사람 나무를 제공하는 사람 세부치를 제공하는 사람 이거는 금이겠죠.
그 다음에 우리 뭐 새부츠 같은 거 만들려면 이렇게 불에 달궈야 되죠 그래서 이제 불도 필요하죠 맞죠.
그리고 이제 뭐 같은 거 하면 물도 필요하죠 네 공사 같은 거 할 때 이런 것들을 제공해서 당상의 자리를 딴 사람들을
지휘 관직을 얻은 사람을 오행 당사자다
나온 당상이네 이런 말 있잖아요.
그렇죠 거기 거기 있어 김상이 자리
그렇죠 당상관 조선시대
정상부 이상을 당 정말 닮은 인물이 등장해요.
광해군 때는 김계식 흔히 요 시자가요 이거 나중에 우리 한자 공부하세요.
시체 시자에다가 쌀 미자가 들어가요 그러면 이걸 우리 식으로 발음하면 뭐 할까요.
쌀의 시체 뭐죠
밥 주기 살의 시체 뭐 우리 한 글자로 살의 시체 술 그렇죠 똥이죠.
그래서 김개똥이에요. 이름이 그래서 실록이 저렇게 나와요 긴계시라고 김상궁 김계씨 실록에 기록된 김계 씨의 모습은 이영애 씨하고는 전혀 딴판이고요 오히려 이 만화 속의 모습하고 상당히 닮아있어 기록에 보면은 네
용모는 피지 못했다. 이런 표현이 나와요 이게 상당히 완곡하게 표현한 건데 좀 심하게 표현하면 정말 못생겼다를 용모는 피지
그런데 어떻게 광해군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박수도 그때 강록수도 그
얼굴은 중간에 중간 이렇게 나오잖아요.
에
외모까지 나올 정도로 나오죠 경증이 있어
3 다 이렇게
네 김개시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료가 많은 편이에요.
그녀가 붓을 잡기만 하면 모든 권력과 금력이 그녀의 순환이 각종 비선실세였는데 더 문제는 광해군이 그런 어떤 그 폭정으로 치달을 때 거기에 완전히 이제 조력자 역할을 해주는 거죠.
더 이제 밀어주고 뭐 그런 거에 대해서 좀 사실은 제대로 견제를 하는 게 아니라 더 이제 부추기는 그런 어떤 그 역할을 해나갑니다.
김계희씨는 막판에는 인조반정의 주체 세력인 서인 세력하고 결탁을 하다
이름 이기 김자점 이런 사람들한테 뇌물을 받고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서 계속 방해군에게 그런 정보가 올라와요 그때도 뭔가 이렇게 역모 혐의 같은 거 있으면 계속 올라오거든요.
너무 그랬을 때 김재 씨가 이거 막는 거죠.
어머 이거 뭐 걱정하실 필요 없다. 전혀 내가 뭐 파악한 바로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
정말
믿는 듣기에 발전시킨 것 같아요.
관쟁이 일어나니까 결국에는 처형돼요 왜 참수하느냐 하면 그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세력들도 나중에는 이런 사람은 또 우리를 응원하고 할 수 있다.
슬프다 그리고 마침내 정말 광해군을 무너뜨리는 그 인조반정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천육백이십삼년 삼월 십삼일 인조반정이 일어났는데
인조 같은 경우는 상당히 광해군하고 개인적으로도 악연이 있었어요.
바로 그 인조의 그 동생이었던 능창군이라는 그 왕자가 그 광해군 때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가지고 이 결과적으로 유배되었다가 스스로 이제 자결을 한 아이고 그런 그 상황을 맞자 고인조의 아버지가 정원군이라는 인물인데 아까 그 세문화에 신이 있었던
정홍은 또 그게 합성이 돼가지고
쪽으로 광해군하고 악연이 있었기 때문에 이 반정 세력들이 인조를 추대할 때 바로 직접 거사에 참여를 해서 인조 반정이 일어났을 때도 이 반정군들이 처음.
모였던 곳이 홍제원이었는데 인조는 그 약간 도위에 명소역에서 함께 딱 있었죠.
인조가 조선에 십육 번째 열여섯 번째 왕이 되고 두 번에 이제 반정이 성공하는 그런 장면이에요.
아 죽이지 않고 유배를 가죠. 처음에 유배 갔던 곳은 처음에는 강화도에 먼저 갔어요.
강화도
우리가 사실은 엄격하게 보면 강화도하고 교동도가 좀 달라요 네 강화도보다 약간 더 북쪽에 있는 교동도로 유배지가 옮겨져요.
네 그리고 이제 최후에는 그 유배지가 제주도까지 가는데 광해군은 사실은 왕으로서는 십오 년 제의했지만 대 생활은 십팔 년 했다 해를 더 길게 했는데 유배를 더 길죠 광해군도 어떻게 보면 멘탈도 되게 강했다고 보여지는 게 그래 광해군의 아들이 폐쇄자 지라 그래요 광해군의 아들 폐쇄자 지라고 하는데 뭐 이렇게 방송 때문에 제가
자료를 찾다 보니까 예전에 왕의 여자라는 드라마에서 우리 정태호 씨가 폐쇄자 역할을 하셨더라고
맞지 않아요. 왜
우리 정태우 씨가 폐세자 역할을 하셨더라고요 맞지 않아요.
이름 나오던데 지성 씨가 연
아까 선영 씨가
저기 박세영 씨
대실로 나왔을 때 나 기억나죠
특별 출연을 했어요. 그런 친한 감독님이 하시는 작품이었는데 세자로 예 우정 출연을 했는데 그게 폐세자세자
여기 제가 자료에 나오더라고요 폐쇄자지 정태우 폐쇄자가 유배지에서 땅굴 파고
탈출을 시도했어요.
그래서 땅굴을 파고 딱 나온 것까지 성공했는데 발각이 돼가지고 나오자마자 결국은 자결을 명 받아가지고 죽어요.
아 근데 그 모습을 지켜봤던 폐쇄자의 부인이 자결을 합니다.
아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돼가지고 광해군의 부인도 그 이후에 곧 돌아가세요.
근데 그런 상황을 계속 지켜봤던 광해군은 그대로 살았다라는
그러다가 이제 1637년에 교동도를 떠나서 제주도로 유배를 가거든요.
그래서 이때 이 광해군이 제주도로 유배 갈 때 그 쓴 이것도 정말 평행이론이라고 할까요.
광해군도 시있어요. 시를 남겼습니다.
쓸쓸하게 이 정말 험한 세상을 다 정말 이렇게 지내다가 생을 마감한 그 광해군 그래서 이 고 광해군의 그 사례에서 우리가 정말 잘할 때 진짜 더 잘해야 된다 이런 것도 보여주는 대목이 있고요 정말 이 광해군 일기 기록 같은 경우도 이 승리자의 기록인 서인 쪽에서 했기 때문에 더 이제 과장된 요소 분명히 있다.
그런 관점에서 또 본다면 어떻게 보면 정쟁의 또 희생양일 수도 있다.
바로 이 반정을 주도한 세력 입장에서는 광해군을 더 문제가 많은 왕으로 만들어야 되는 정당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광해군이 좀 억울할 수도 있다라는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 당시에 노래가 민간의 포
그래요
그게 상식아라는 그런 노래였는데 정태구 씨가 한번 이거 읽어주시죠
아 너희 훈신들아 스스로 뽐내지 말라 그의 집에 살면서 그의 전토를 점유하고 그의 말을 타며 그의 일을 행한다면 너희들과 그 사람이 다를 게 뭐가 있는
바로 이제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그 세력들이 광해군하고 뭐가 다를 게 있느냐 그래서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인조반정이 그 시대에서는 분명히 성공한 반전이었지만 이후에 뭐 외교 정책의 문제점이라든가 이런 것을 보았을 때 광해군이라는 왕이 정말 저렇게까지 당해야만 됐을까라는 이런 좀 분명히 그런 아쉬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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