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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식

조선의 왕과 그 왕이 좋아했던 음식들

by 푸른바다99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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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불패의 용장 원조 외국 힐러 백발백중의 신궁 이성계는 변방의 무장 출신으로 직접 조선을 건국하고 창업군주가 된 사람입니다. 
이성계에 대해선 드라마 용의 눈물부터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태종 이방원 등 여말선초를 다루는 사극에서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 공통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이성계가 겁나 센 상남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상남자 장군답게 고기 요리를 좋아했는데요. 
다만 왕자의 난과 조사에 이 난 이후에는 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졌고 고기를 자제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엔 정말 다양하고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만큼 왕들에 대한 기록도 많이 존재하는데요. 
이번 영상에서 조선시대 왕들이 좋아했던 음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앞에서 말했듯이 고기를 좋아했었는데 고기 말고도 수정포도 그러니까 청포도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수정 포도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태조 7년 9월 1일 몸저 누워 있을 때도 수정포도가 먹고 싶다고 말했죠. 
이에 세자와 왕자들이 상리 원사 한간에게 수정 보도를 구해올 것을 지시했는데 경력 김정준이 설이 맞아 반쯤 익은 산포도 한 상자를 가지고 오자 기뻐했고 이틀 뒤 한간이 드디어 수정포도를 구해와 받치자 기뻐하며 쌀 열석을 상으로 내렸습니다.

이성계는 수정 포도를 먹고 기력을 회복해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세종이 좋아하던 음식은 고기 요리입니다. 
그중에서도 닭백숙을 참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세종의 고기 사랑은 유별난 수준이었습니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주상은 젊었을 시절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라고 말했으며 신하들 또한 전하께선 평소 고기가 없으면 수라를 드시지 않으셨다 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유교 예법상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기간은 먹지 않았습니다. 
큰아버지 정종의 초상이 났을 당시 채소만 가지고 식사를 하기도 했죠. 
다만 이를 본 태종이 매우 놀라면서도 기특하게 여긴 것을 보면 태종은 자기 형 초상에 아들이 근육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나이를 먹고 나선 담백한 요리를 찾기도 했습니다. 
어폐류나 과일을 좋아했고 특히 효자로 유명한 아들 문종은 아버지를 위해 전복을 직접 요리해서 올리거나 후원에 직접 앵두나무를 심고 가꿔서 앵두 열매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세종은 매우 기뻐하면서 세자가 나를 위해 직접 키우고 올린 것이라 더욱 각별하다 라고 했습니다.

이 외에는 탄산수를 좋아해 초정 약수를 한양까지 운송하는 시스템을 직접 만들기도 했으며 직접 초정리 약수터에 요양 가기도 했습니다. 
연산군은 우리나라 폭군의 대명사로 사극에서 많이 다뤄지기도 했죠. 
그에 대해선 대부분 술과 여색에 환장했던 노는 것을 좋아하는 왕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평생 보양식을 좋아했는데요. 
그는 말고기를 좋아했고 양기를 보충한다며 흰 말을 잡아오라고 직접 명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민물장어 마늘 백숙 등 소문난 보양식과 중국을 통해 수입되는 각종 수입 과일 등 귀하고 비싼 음식은 전부 좋아했습니다. 
수입 과일의 경우엔 중국에 사신을 보내면서 특별히 구해올 것을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연산군은 이외에도 특히 사슴 고기에 집착하기도 했는데요. 
그 중에도 특히 사슴꼬리를 좋아했는데 관리들에게 사슴 꼬리 진상을 요구하고 지키지 못하는 이들은 따로 고문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슴의 꼬리 뿐만 아니라 사슴의 혀나 태아 요리도 좋아했고 관리들은 이러한 진상품을 채우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구매해 올려야 했습니다. 
세종이 고기 없이 수저를 들지 않았다면 광해군은 잡채 없이 수저를 들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다른 음식보다 잡채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충이라는 인물이 할아버지가 명종 때 간신으로 탄핵당했고 본인도 평가가 나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조판서라는 요직 중의 요직이며 중책을 맡을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이 광해군에게 맛있는 잡채를 받쳐서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여담으로 당시 잡채는 지금과 달리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고 채소와 썰어넣은 찹쌀 전병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사극의 단골 등장 인물인 숙종은 재위 기간 내내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준 왕입니다.

그러면서도 성질 머리가 정말 갓 같은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오죽하면 어머니 명성황후 김 씨가 내 배로 나왔지만 아침 저녁으로 오락가락하는 그 성격은 나도 감당 못하겠다 라고 말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숙종이 좋아했던 음식은 타락죽입니다. 
타락죽은 간단히 말하면 우유로 만든 죽인데요. 
쌀을 불리고 우유에 넣어서 끓여 만들었습니다. 
숙종과 우유죽이라니 영 어울리지 않지만 나름 숙종이 선호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선시대 기준으론 정말 건강하게 장수한 편이지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잔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특히 숙종 9년엔 한양에 유행하기 시작한 두창에 읊마 고생하기도 했죠. 
때문에 당시 귀중품이자 원기를 보충해주는 보양식으로 여겼던 우유를 이용해 타락죽을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도 당시 기운을 회복시켜주고 노화를 방지한다고 여겨지는 검은 음식인 검은콩 검은깨 오골계 흑염소 등의 음식도 자주 먹었습니다.

오골계를 손질한 다음 그 안에 흑염소 검은콩 검은 개를 채워 넣고 푹 고아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영조는 조선시대 왕 중 최장수 왕입니다. 
일반적인 조선시대 왕보다 2배 이상 살았죠. 
그랬던 만큼 영조의 식사는 굉장히 건강식으로 보입니다.

영조는 청포묵과 미나리 숙주 등을 넣고 만든 탕평채나 버섯전 파전 당근전 등 채소나 나물류를 즐겨 먹었고 신선로를 먹었습니다. 
여기서 탕평채와 신선로를 먹은 것은 당쟁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죠. 
영조는 그리고 주로 쌀밥이 아닌 보리밥을 먹었고 여름에 날이 더워지면 물에 밥을 말아 조기와 함께 먹었습니다.

또한 그는 메뉴뿐만 아니라 먹는 방식도 정말 건강함의 기본을 지켰는데요. 
항상 식사를 해도 적은 양만 먹었으며 정해진 시간에 맞춰 먹었습니다. 
하루 다섯 차례 드렸던 식사는 세 차례로 줄였다고 하네요. 
여기에 더해 차가운 요리를 아주 싫어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아들 사도세자가 냉면과 복숭아를 먹고 배탈이 나자 아주 해로운 것을 먹었다라며 그를 질책했습니다.

이외에는 인삼차를 즐겨 마셨는데 특히 영조와 정조가 인삼차를 좋아해 조선왕조 실록에 등장하는 인삼이 들어간 차에 대한 기록 중 3분의 2 정도가 영조와 정조 제의 기간에 나옵니다. 
여담으로 영조가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는 것은 좋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국정을 논하는 회의를 하다 보면 회의가 길어지기 마련인데 영조는 회의 도중 식사 시간이 되면 혼자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물론 같이 회의하던 신하들은 왕이 없으니 대기하며 굶어야 했습니다. 
19살까지 어린 시절을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나무를 하며 지낸 강화도령 철종 1849년 하루 아침에 왕이 된 그는 글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론이라는 야사도 있지만 실록에선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런 소문이 돌 만큼 기초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문장을 읽을 줄 몰랐다고 하죠. 
이런 철종은 생애 대부분을 농사를 하며 지낸 탓인지 입맛이 굉장히 서민적이었습니다.

그가 주로 좋아하던 음식은 메밀로 만든 칼국수와 숯으로 만든 깍두기였죠. 
또한 왕들이 마시던 고풍스러운 술보다 서민적인 막걸리를 더 좋아해서 중전에게 따로 부탁해 몰래 막걸리를 들여와 마셨다는 야사가 남아 있을 만큼 생애 전반에 걸쳐 왕이라기보다는 농부였던 시절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습니다. 
고종은 조선 왕들 중 미식가로 유명한 왕입니다. 
항상 늦게까지 깨어 있어 야행성이었던 그는 야참으로 설렁탕 온면 냉면 등을 먹었습니다.

특히 냉면을 좋아했는데 맵거나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냉면은 배를 갈아서 만든 동치미 육수와 편육의 배 자으로 고명을 얹어 먹었습니다. 
그 외에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채식을 즐겼고 술 역시 좋아하지 않아 대신 식혜를 마셨습니다. 
고종은 개화기 왕이었기에 식혜나 술 외에도 즐긴 음료가 많았습니다.

커피와 사이다를 좋아해 자주 마셨는데 커피의 경우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나름 조예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커피와 관련해선 고종에게 안 좋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악관파천으로 칠러파가 득세할 때 출세했던 김홍륙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후에 권력을 남용해 지나친 비리로 유배형을 받았습니다.

김홍륙은 이에 앙심을 품고 유배 가기 전 사람을 시켜 고종이 좋아하는 커피에 치사량에 아편을 넣도록 했는데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고종은 향이 이상해 마시지 않았지만 태자는 그만 커피를 마셔버렸고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김홍륙 독재 사건으로 관련된 자는 모두 사형당했습니다 고종의 이러한 미식은 상황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조선이 강제 합병된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망국의 마지막 군주 치고는 이후에도 궁에서 잘 먹고 잘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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