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사회에 사람들은 대부분 신을 믿었습니다.
자연물에 깃든 다양한 신을 믿거나 제사를 지냄으로써 상과 벌을 주는 또는 하늘에서 1천 명을 내려주는 신 등이 있죠.
그런데 신을 믿지 않았던 한 철학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신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대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고민했죠.
고민 끝에 그는 결론을 내립니다. 모든 우주 만물은 도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요 최초로 신을 넘어서 생각을 펼친 고대 철학자 그는 바로 노자입니다.
노자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으며 실제 했는지 안 했는지 심지어 한 명인지 두 명인지는 아직까지 논쟁거리입니다 고대 인물에게서 보이는 흔한 이지만 노자는 약간 더 베일에 쌓인 인물입니다.
더구나 훗날 도교가 성행해 신격화 되면서
종 설화들이 난무하죠. 하지만 여기서는 춘추시대 인간 노자를 중심으로 사마천이 쓴 사기에 나온 기록과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으로 정리했습니다.
노자는 늙은 노자를 씁니다. 은 선생님이라는 뜻이죠.
본래 이름은 이이입니다. 그럼 왜 이자가 아니라 노자일까요.
이유는 엄마 배 속에서 81년을 있다가 태어나니 이미 노인이었다고 하는 설화 때문입니다.
또한 장수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도 좀 더 분석적인 의견으로 고대에는 이씨와 노씨 발음이 유사해서 노자가 나중에 이 씨로 변했다고 하는 것이죠.
그는 초나라 출신으로 공자와 동시대인 춘추 말기를 살았습니다.
공자보다 나이가 많은 정도로 알려져 있죠 노자는 160세나 200세를 살았다고 합니다.
도를 닦아서 그리 오래 살았다고 하네요.
노자는 주나라 국립도서관장으로 지냈습니다.
주나라는 쇠약해져 갔지만 명목상 천자국이었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보가 담긴
책들을 노자는 접할 수가 있었죠. 여기서 노자는 스스로 학문을 다듬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어느 날 노자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손님은 공자였죠. 당시 예를 알기로 유명했던 공자는 노자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대신 자기가 알고 있는 예를 드러내고 쓸지도 모르죠.
공자는 얘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의 노자는 말했습니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이 숨겨 아무것도 없어 보이게 하고 군자는 덕을 가지되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그대는 예를 빙자한 교만과 욕심 그리고 위선과 야심을 버리시오 쉽게 말해 공자가 가진 예는 그저 보여주기식이란 뜻이죠.
진정한 도는 비움이라고 생각한 노자다운 답변입니다.
공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노자가 마치 용과 같은 존재처럼 보였다고 말했죠.
시간이 흘러 주나라는 점점 쇠약해져 이름만 남았습니다.
노자는 결국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아예 속세를 뒤로 하고 은신해 살기로 마음 먹죠 그는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파란색 소인데 노자와 대화도 했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그렇게 소를 타고 함곡관을 지나가려는데 그곳의 문지기인 윤희가 가로막았습니다.
윤희는 노자를 알아보고서 부탁을 하나 합니다 가르침을 적어달라고 말이죠.
노자는 며칠 만에 글 5천자를 적어줍니다.
그게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도덕경이란 글이죠.
노자는 그렇게 산 속 어딘가로 떠납니다.
이후로 아무도 그 행방을 알 수 없었죠.
문지개였던 윤희는 제자가 되어 같이 따라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게 어딘가로 은거해 버린 노자는 윤희에게 어떤 글을 써주었을까요.
이번에는 노자가 가진 사상을 살펴보겠습니다.
노자는 도가 학파의 시초입니다. 후에 장자가 다듬고 발전시켜 노장사상이라 부르기도 하죠.
도가사상은 무의 자연이 핵심입니다. 무의 자연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뜻합니다.
큰 방향은 노자와 장자가 같지만 성격은 약간 다릅니다.
장자는 자유를 가장 우선시했고 노자는 무의로서 정치에 즉 인위적이지 않은 다스림을 추구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이란 책을 남겼습니다. 또는 노자라고도 하죠.
도덕경은 도편과 덕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뒤에 붙은 경자는 경전으로 높여져서
다 각각 37장 44장으로 총 81장 5천 자입니다.
다른 고전에 비해 짧은 글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주석과 해석이 달린 고전이죠.
노자가 썼다고는 하지만 전국 시대에 후첨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시대에서만 사용되었던 말이 도덕경에 적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노자가 전국 시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도덕경은 다른 제자백가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앞서 공자는 노자에게 한 수 배웠으며 손자병법 한비자 불교 사상에 스며들었다.
때문에 도덕경이 정치서나 병법서 등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도덕경에 적힌 알 듯 모를 듯한 모호한 문장 때문이기도 하죠.
이제 도덕경에서 노자의 사상을 쉽고 간단하게 키워드로 살펴보겠습니다.
노자 사상을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도 무의 무 정치관으로 간단히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도에 대해 살펴보겠다.
습니다. 노자는 세상 만물이 도로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도라는 게 어떤 물체도 아니고 하늘도 아니고 신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냥 무입니다. 어떤 것보다 항상 앞서서 존재하죠.
그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어쩔 수 없이 도라는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죠.
이 내용으로 도덕경을 시작 비록 도덕경이 글로 쓰여졌지만 말하고자 하는 도는 글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처음부터 못 받고 시작합니다.
대체 도가 뭘까요. 아마 정의 내릴 수 있다면 그건
노자가 말한 도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해는 도울 수 있습니다.
도는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시작합니다.
무는 유를 낳습니다. 유는 천지 만모를 만들죠 즉 도는 그 어떤 것보다 앞서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도는 아무것도 없는 무이고 천지 만물이 생기는 근원인 셈이죠.
도를 잡고 무에 비유한 이유는 노자가 비우는 철학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도라는 것과 가까워지려면 그 방법으로 무의하는 자세를 중요시 했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로 무의입니다. 도각파의 핵심 사상이죠.
인위적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집착해서 화를 부른다고 합니다.
공자가 강조한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부터 예라는 것은 없었는데 만들어 놓고 서로 예를 따지고 있죠 본래 아무것도 없는 근원을 따라가는 것이 세상 만물이 자연스레 운행되는 최고 경지라고 합니다.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죠.
이런 세상의 원리가 무너졌을 때 인을 추종하게 되고 그것도 무너지면 의를 추종하게 되면 그것도 무너지면 예를 추종하게 되는데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난세가 되고 마는 것이죠.
이 모든 것들 위에는 도가 있고 도는 아무것도 없는 무위에서 시작합니다.
무위 무이자연하다는 이 철학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물질이 있습니다.
바로 물입니다. 세 번째 키워드로 물입니다.
상선약수라고 하죠.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보다 부드럽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바위도 깎아내는 강한 면도 가지고 있죠
게다가 어떤 모양 그릇이라도 그 모양에 맞춰서 채워질 수 있습니다.
거기다 우리 삶의 필수 요소이자 결국엔 한 곳으로 모이는 그 성질을 노자는 좋아했죠.
인위적이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다는 무의 자연은 바로 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물이 가진 유연함과 부드럽지만 강한 특징은 노자를 대표할 수 있는 아이콘으로 볼 수 있죠 노자는 이런 점을 정치에 적용하면 천하가 태평하리라 주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자의 정치관입니다. 나라 또한 무의로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작은 생선을
뜻이 말이죠. 작은 생선은 구울 때 자주 뒤집게 되면 다 뭉개져 부서지고 맙니다.
적당히 한 번만 뒤집어야 좋은 것이죠.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뭔가를 하면 망가집니다.
손 대지 않다가 중요할 때 한 번만 뒤집는 것이죠.
앞에서 이야기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쉽게 말해 백성들은 가만히 냅두면 잘 산다는 말이죠.
또한 소국과민 구민을 제시합니다. 소국과민은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작은 마을을 이뤄 따로 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엔 닭 울음소리 말고는 왕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 무기나 갑옷 등이 필요 없게 되어 평화로워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미는 어리석은 백성을 뜻합니다.
노자는 다른 철학자와 달리 지혜를 배척합니다.
계몽이 아닌 목매를 주장하죠. 노자가 볼 때 지혜는 인위적인 산물입니다.
지혜보다 앞선 근본은 무 즉 아무것도 없는 것이죠.
근본에 더 다가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시선으로 볼 경우 백성들의 판단력을 상실하게 하는 권력자들의 정책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고전을 대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은 다양해지죠
노자는 아시아 3대 성인 중 한 명입니다.
공자 석가와 함께 말이죠. 공자는 유교 석가는 불교 노자는 도교를 대표하죠.
이 세 가지 사상은 아시아 역사에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물론 역사상 유교가 주연이지만 도교 또한 조연급 사상으로 항상 자리 매겨왔죠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상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변형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노자가 주장한 고대 도가사상은 후대 도교와는 성격이 다르죠 노자는 도라는 근본을 바라봤지만 정작 후대 도교인들은 노자를 신격화하고 신선이 되고자 집착했습니다.
도가와 도교가 깊은 연관은 있지만 같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죠.
노자가 바라본 도가 무엇인지는 동양철학에 있어 영원한 숙제가 될 듯 합니다.
아니면 애초에 없는 것일 수도 있고요 도는 무에서 시작한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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