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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식

조선의 칼 환도

by 푸른바다99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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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면 환도가 일본도 베꼈다는 말이 나올 만했네 오랑이 무기 사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뭔가 여러분 우리는 저번 시간 고려시대의 칼펜에서 환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한번 알아봤습니다. 
환도는 몽골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칼로 일본도를 베껴 만들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죠.

하지만 아이된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고 이런 낭설이 퍼지게 된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임진왜란 때문이었죠. 
자 그렇다면 대체 이 환도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었길래 이런 말이 나온 걸까요. 
그리고 임진왜란은 환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요. 
지금 한 번 살펴봅시다 조선시대 환도의 역사 환도는 조선시대 내내 애용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칼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외화를 가진 거의 대부분의 칼을 환도라고 통칭했는데요. 
일본도와 여진족의 칼 심지어는 이양선에서 발견된 서양의 칼조차도 한도라고 부를 정도였죠. 
그러나 본 영상에서는 이렇게 생긴 칼만을 한도로 정해두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조선은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세운 나라인 만큼 초기에는 고려의 무기 체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조선도 고려처럼 칼의 사용 빈도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조선시대 고려 때보다 칼의 비중이 더 줄었죠. 
왜 그랬을까요.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오랜 평화 때문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았던 고려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큼직큼직한 전쟁 몇 개를 제외하곤 줄곧 평화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무기들 중 가장 비쌌던 칼의 비중이 가장 먼저 줄어들었죠.

또 칼은 다른 무기들에 비해 날이 길어 관리가 어려웠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근데 뭐 이건 사실 칼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랜 평화는 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무기들이 제대로 된 생산과 관리가 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는 칼의 비중이 줄어들게 된 두 번째 이유로 이어졌습니다. 
칼의 비중이 줄어든 두 번째 이유로는 칼의 길이를 들 수 있습니다.

조선은 고려처럼 전투의 양상이 대부분 수성전이었기 때문에 칼보다 화를 선호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화해 보조 무기였던 칼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았죠. 
그래서 조선의 무인들은 활을 쏠 때 불편하다며 칼의 길이를 대폭 줄여버렸습니다.

그런데 칼의 길이를 어찌나 줄였던지 임진왜란 때는 일본도를 제대로 상대하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조선은 칼의 길이를 얼마나 줄였길래 일본도의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당시 일본도는 또 얼마나 길었던 것일까요. 
일본도에 관해서는 차후 일본의 칼들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당시 일본에는 통일된 규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다양한 길이의 칼들이 사용되었는데요. 
이는 당시 일본이 전국 시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중앙정부 없이 여러 지방 세력들이 난립해 서로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다양한 칼들이 만들어졌는데요. 
주로 70cm에서 90cm 긴 것은 90cm에서 120cm 정도의 칼들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과는 반대로 조선은 줄곧 통일된 국가였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군대는 오직 국가만이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칼에 관한 통일된 규격을 가지고 있었죠. 
물론 조선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조선 또한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유산으로 인해 여러 종류의 통일되지 않은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종식이 처음으로 환도의 규격을 통일하기 시작했죠. 
물론 규격화를 하긴 했지만 때에 따라 규격을 벗어난 다양한 칼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여튼 당시 조선군이 사용한 환도의 규격은 조선 왕조 실록에도 잘 나와 있는데요.

당시 헌도의 길이는 보병용과 기병용 이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보병용은 그 길이가 약 73센치미터 기병용은 약 65cm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실제 환도들의 길이를 재보면 그 평균 길이는 59센치미터로 실제 규격보다 짧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길이만 들어선 이게 얼마나 짧은지 감이 잘 안 오죠 그래서 로마의 글라디우스를 예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우린 저번 시간 로마의 칼 글라디우스 편에서 잘 알아봤듯이 글라디우스는 헌도와 비슷한 약 65센치 정도였습니다. 
글라디오스는 당시 다른 이민족들의 칼에 비해 10cm 이상이 짧았기 때문에 길이 면에선 열쇠였죠.

그래서 로마군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거대한 방패 스큐틈으로 밀집 대형을 이루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에선 당연히 이런 대형 방패도 밀집 대형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근접전에서 무기의 길이는 뭐다 엄청난 전력 차이다. 
그래서 근접전 최강의 무기가 창인 이유이죠.

그리고 우린 이를 창의 인류 최고의 무기인 이유 편에서 자세히 알아봤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환도가 일본도에 비하면 그 길이가 적게는 10cm에서 20cm 많게는 2배 이상이나 차이가 나니 이는 조선이 근접전에서 얼마나 취약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렇다 보니 지금의 우리가 언뜻 보기엔 아무리 카리 활쏘기 불편하다고 해도 근접전에서 매우 중요한 무기인데 어째서 우리 조상님들은 팔의 성능이 떨어질 줄 알았으면서 이 정도로 길이를 줄였나 싶으실 겁니다. 
그러나 거기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조선이 주로 수성전이나 의병들의 게릴라전 같은 칼을 쓸 일이 적은 전투만 주로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근접전에서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아 칼을 쓸 만한 대규모 난전도 최대한 피했죠. 
두 번째는 조선의 보병들도 로마군들처럼 방패를 사용하긴 했습니다만 일반 병종들은 칼보다 창을 주로 사용했죠.

그러나 우린 지난 시간 임진왜란 안에서 쓰인 창들편에서도 알아봤듯이 조선은 칼뿐만 아니라 창도 일본보다 짧았습니다. 
아니 이거 뭐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죄다 짧았네

그래도
다른 건 더 컸겠지 물론 그 키 키
키 얘기한 거예요.
그러나 무엇보다 조선이 칼을 등한시한 이유는 조선군의 약 3분의 2 정도가 활을 쏠 수 있을 정도로 활에 집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상 근접 보병을 제외하곤 전부 활을 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죠. 
이처럼 활에 집착하는 군대다 보니 활과 화살을 휴대하는 일이 칼을 짧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활이 얼마나 무거웠길래 이 정도까지 칼의 길이를 줄였던 것일까요. 
당시 조선군은 한 명당 한 개 혹은 두 개의 활을 찼으며 화살은 20여 발을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활이라는 무기는 뭐다 화가 화살만 있다고 해서 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이 말입니다.
우린 저번 시간 활 속의 장비에 대한 모든 것 편에서도 자세히 알아봤듯이 활을 쏘기 위해선 활과 화살 외에도 깍지 습 궁대 활집과 화살 집을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거기다 무거운 갑옷까지 입었죠. 그렇다 보니 조선 초기 무과 시험에서는 보병 한 명이 중무장을 한 채 활과 화살 그리고 환도를 차고 300보 이상을 달려갈 수만 있으면 갑사로 채용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듣고 보니 저라도 작은 칼을 차고 싶어지네요. 
아니 뭐 군대 다녀온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케이원이랑 케이투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말이오 암 내가 잘 알지 박격포병이었는데 케이투는 내가 잘 알지 이처럼 칼의 길이가 짧고 보조 무기로만 활용되다 보니 한도의 사용법 또한 변했습니다.

고려시대엔 분명 곡도가 환도의 원형이었습니다. 
그래서 환도는 백이용 칼이었죠. 하지만 칼이 짧으면 배기엔 취약해지고 찌르기가 더 유용해집니다. 
그래서 글라디우스도 찌르기에 중점을 둔 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조선 초기의 환도들은 좀 더 효율적인 찌르기를 위해 칼날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곧아졌습니다.

왜냐하면 곡도는 백기용 칼이라 찌르기가 힘드니까요. 
그런데 찌르기는 뭐다 베기보다 더 많은 훈련과 숙련도가 필요한 어려운 공격 방식이다. 
그런데 조선은 뭐다 평화가 오래 지속되어 군사들의 전투 경험과 훈련도가 매우 낮은 군대다

이런 조선군이 이런 칼을 들고도 인지왜란에서 앉은 게 용하네요. 
일본도의 위력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왜구 등을 통해 조선에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도를 배우려는 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어왔죠 그 결과 고려시대에는 일본으로부터 칼을 진상받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직접 수입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일본의 기술자를 파견해 칼 제작 기술을 배워오기도 했고 일본의 기술자를 조선에 데려와 조선에서 일본도를 직접 생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로들을 통해 인지왜란 이전에 이미 많은 무인들이 일본도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려와 조선군의 주력 무기는 화이였고 칼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 
보니 이러한 시도들의 결과는 매우 작았습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은 적극적으로 일본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조종이 먼저 나서 일본도를 노획해 쓰기도 했고 자체적으로 일본도를 모방해 만들기도 했으며

조선으로 투항한 일본인들을 통해 일본도의 제작 방법과 검수를 전수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일본도 제작 기술을 익히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 갑사 송환이 배 위에서 일본도 두 자루를 만드는 데 성공할 정도였죠. 
역시 이순신 장군님
그래서 임진왜란이야말로 조선의 칼들이 일본도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시기였죠. 
그리고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길어진 칼라리였습니다. 
이는 정조 때 쓰인 조선의 무예서 무예 도보 통지에 잘 나와 있는데요. 
무예도보통지에는 조선군의 환도 길이가 약 90센치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전에 65cm에서 73cm에 비하면 굉장히 길어진 것이죠. 
하지만 조선의 이러한 노력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무리 조선이 노력한다고 해도 조선의 전투 방식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로도 줄곧 수송전을 중심으로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활이 가장 애용되는 무기였고 그만큼 칼을 쓸 일은 적었죠. 
더 나아가 임진왜란 이후엔 조총까지 급부상하면서 카리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조총병들은 조선의 조총병들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근접전에서도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한송 검이 아닌 양손검으로 들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이는 조선과 일본의 전략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은 무엇보다도 근접전을 최대한 피하고 활과 화포 같은 원거리 무기로 최대한 많은 피해를 주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총수들의 칼이 짧았죠. 반대로 일본군은 최대한 근접전으로 벌이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활은 조선의 활에 미치지 못했고 조총 또한 명중률이 낮고 재장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일본군이 원거리 공격에 취약했기 때문에 조총병들 또한 근접전을 염두에 둔 것이었죠. 
물론 조선군은 일본군과 같은 조총을 사용했습니다만 원딜이 민족답게 일본군보다 더욱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갖고 있어 가능했죠.

요즘도 한국은 양궁과 사격 강국인데 괜히 원디의 민족이 아니네 이처럼 조선 중기부터 화가 조총의 비중이 늘어나자 칼은 사격시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다시 짧아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위력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요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조선 후기의 전쟁들은 이미 근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칼은 중요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서양에서조차 칼은 기병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의장용으로만 쓰일 뿐이었죠. 
그리고 이는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 후기의 칼들을 보면 이게 진짜 실전용 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짧은 것들도 존재합니다.

네 전부 의장용이죠. 이렇듯 조선 후기로 가면 칼뿐만 아니라 월도 같은 무기들까지도 전부 의장용으로만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칼의 몰락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상 냉병기 전체의 몰락이었죠. 
그리고 구한말이 되자 환도는 서구의 신식 무기들의 영향을 받아 유럽식 사부르처럼 개량되기도 했습니다만 이건 극소수의 의장용 칼이 대부분이었죠.

그리고 그렇게 환도의 역사는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조선에서는 더 이상 환도가 아닌 순사들의 일본도가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정말 통탄할 일이네요.
오늘은 고려시대에 탄생한 환도가 조선시대에는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짧아졌고 또 왜 일본도를 모방했는지에 대해 한번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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