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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식

한명회와 성종

by 푸른바다99 2022.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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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어린 나이에 왕 위에 올랐지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성군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6년의 수렴 청정 기간 동안 성실히 학문에 임했으며 어려서부터 성군의 자질을 여실히 보였는데요.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성종이 성인이 되자 정희왕후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그에게 친정을 맡기면서 마침내 성종은 어엿한 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조정의 권력은 원상에게 쏠려 있었기에 성종은 이를 되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성종이 친정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아직 권력은 원상들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원상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종이 친정을 시작하기 전에 일어난 일부터 한번 살펴볼까요. 
원상들은 교대로 돌아가면서 승정원에 출근하여 성종과 정희왕후에게 자문을 해줬고 겸판서란 이름으로 육조를 직접 장악했으며 성종의 직위를 도왔다 하여 좌리공신에 책봉되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성종이 왕위에 오른 지 3년쯤 지났을 때 아침 경연이 끝난 뒤 사언부 관원 박시영이 성종에게 나아와 아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초기에는 원상과 더불어 정사를 의논해야 했으나 이제는 전하의 학문이 출중하시어 친히 선물을 결재하시니 원상들로 하여금 하루 종일 승정원에 있게 하지 마시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불러서 의논하시지요.

원상제를 폐지하자고 건의한 건데요.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나온 박시영은 사원부로 돌아가 다른 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얘기를 들은 관원들은 화들짝 놀라더니 아니 이런 일을 우리와 의논도 하지 않고 혼자 하려면 어쩌잔 거요. 
아니 내가 내 의견을 전하께 아뢰는데 본부한테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오 그게 단지 자네의 의견일 뿐 우리와 관계없다는 말을 누가 믿겠소

게다가 원상제는 좋은 것인데 어찌 폐지하자 한 거요. 
이 사실을 원상이 알게 되면 분명 전하께 해임해달라고 청할 텐데 그 전에 얼른 먼저 가서 자네가 잘못 생각했다고 말씀드리고 전하께 대죄를 청하시오 그런데 박시영이 머뭇거리는 사이 이 얘기를 들은 한명회는 정치에 잔뼈가 굵은 대신 답게 바로 선수를 칩니다. 
박시영이 전하께 말하고자 한 바는 늙은 대신이 전하와 정사를 논하더라도 정치에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이 먼저 해임해달라고 청했어야 하나 혹여나 신이 게을러서 일을 그만두려 한 것이라 생각할까 우려돼 차마 그러지 못했사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신등을 원상에서 해임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일도 없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서 미안하다 그러니 어디 해고해 봐라라는 건데요.

그러자 한명회의 의도를 알아챈 정의왕후는 주상께서 아직 어리시고 나도 아는 것이 없기에 원상들의 도움을 받아 정사를 돌본 것인데 대관이 이를 모르고 경들을 불편하게 했군요. 
굳이 신경 쓰지 마세요 라며 원상 편을 들어줍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면 처음에 원상을 탄핵했던 박시영의 처지가 난감해졌겠죠. 
박시영은 다시 성종을 찾아와 아래입니다.

오늘 전하께 말씀드린 것은 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옵니다. 
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사람마다 각기 생각이 다른 건데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물러가세요. 
하오나 전하 사원부는 본래 먼저 관원들과 함께 의논한 후에 의견을 모아 전하께 아뢰어야 하는데 이 일은 신이 관원들과 의논하지 않고 홀로 아래였사옵니다.

청컨대 그 죄를 물어주시옵소서 그러자 박시영의 죄를 묻기 위해 조사하던 중 사원부 관원들이 박시영을 압박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헌부 관원들은 대거 좌천되고 맙니다. 
애초에 대신의 잘못을 비판하는 게 주요 업무인 사업부가 이 일로 다 같이 벌을 받게 되었으니 이제 누구도 원상에게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죠.

한명회는 조선 건국 이후 최고의 권력을 누린 대신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위세를 보여준 사건을 하나 소개해볼까 하는데요. 
이 사건은 앞서 원상제 폐지를 건의했다가 사원부 관원이 대거 좌천된 사건으로부터 고작 3개월이 지난 뒤 일어난 일입니다. 
병조정랑으로 있던 김순성이란 자가 평창 군수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 사실을 보고받은 성종은 한명회에게 이 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는데요. 
그러자 한명회는 김순성의 아내가 병이 들었기에 당장 부임하긴 힘들 듯 하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사헌부 관원이 성종을 찾아와 이 일을 지적하는데 김순성은 단지 평창이 궁핍한 시골이라 가기 싫은 것인데 아내의 병을 핑계로 한명예에게 청탁하여 발령을 피했으니 그 죄가 크옵니다.

또한 한명회도 청탁을 받고 인사에 개입했으니 함께 벌하여 주시옵소서 김순성이 한명회에게 청탁하는 것을 대체 누가 보고 들었느냐 보고 들은 자는 없습니다만 김순성이 청탁하지 않았다면 한 명예가 어찌 그의 아내가 병이 났다는 사실을 알았겠습니까

그러자 한명회는 이번에도 노련하게 받아치는데요. 
김순성의 아내가 아픈 것은 저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옵니다. 
신은 단지 알고 있는 사실을 아뢰였을 뿐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이는 분명 신이 전하의 총애를 받아 견 병조 판서로서 병권을 맡고 있기에 이를 시기한 자들이 신을 비방하는 것이오니 정컨대 신을 해임하여 주시옵소서

앞선 사건과 똑같은 패턴이죠. 그러자 성종은 명백한 증거도 없는데다 대간이 이리도 작은 일로 대신의 죄를 청하면 대신이 어찌 안심하고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 사안부 관리 전환을 좌천시키도록 하라 그렇게 한 명예를 탄핵했던 사원부는

소속 관원 전체가 좌천되는 대구륙을 겪게 됩니다.

이렇게 권세가 드높았던 한명회지만 성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성종은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조정의 권력이 대신들에게 쏠려 있음을 알아챘고 친정을 시작하자 이제 권력을 되찾아 올 때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앞서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왕과 대신들이 합심하여 말렸다고 했었죠. 
이때 몇 번의 줄다리기 도중
성종이 한명회에게 부탁해 정희왕후를 말려달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명에는 정의 왕후를 찾아가 수렴청정을 그만두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마마 전하께서 즉위하시고 이토록 나라가 안정된 것은 마마께서 정사를 돌보셨기 때문이옵니다.

마마께서 물러나시면 온 나라의 백성을 저버리시는 건데 그래하면 신등이 술 한 잔이라도 어찌 편히 마실 수 있겠사옵니까 라고 했는데요. 
그런데 친정을 시작한 바로 다음 날 성종은 이 발언을 콕 집어서는 어제 좌의정이 대왕대비께 청하길 마마께서 물러나시면 온 나라의 백성을 저버리시는 건데

그리하면 신등이 술 한 잔이라도 어찌 편히 마실 수 있겠사옵니까 라고 말했는데 이 말만 놓고 본다면 정승들이 나를 믿지 못하는 것 같소 이전까지는 원상의 권력이 하도 막강했기에 누구도 그들의 권세에 도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한명회의 발언도 그냥 잠자고 넘어간 건데요.

그런데 성종이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이걸 문제 삼고 넘어진다는 건 권력을 가져오겠다는 신호인 거죠. 
따라서 이를 눈치챈 원상과 대관들은 부랴부랴 나서서 한 명예를 탄핵합니다. 
또한 한 명에도 일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는 바로 다시 입궐해 사죄했는데요.

그렇게 한 명의 사죄로 일이 마무리되는가 했는데 이걸 기회 삼은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앞서 나이를 고발해 죽게 만들었던 유자광입니다. 
한명애가 늙고 멍청해져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아니면 병들고 미쳐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이는 분명 속에 있던 말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옵니다.

또한 대관들도 형식적으로만 그를 비판할 뿐 강하게 말하지 않고 자숙해야 할 한명에는 지금도 집안 가득 위로하러 온 사람들과 함께 희희낙락 거리고 있으니 청컨대 그를 처벌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성종이 이를 거절하자 유자광은 더욱 강력한 상소를 올립니다. 
그러자 한명회는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나오는데요. 
신이 이 사이에 듣건데 일찍이 신이 전하께 사죄하고 용서받은 일을 가지고 두 번이나 상소를 올린 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산문도 이시에도 남미도 역모를 꾸민 자들은 모두 신을 먼저 제거하려 했습니다. 
유자강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다 신의 권세가 높아 벌어진 일이오니 정헌대 신을 해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유자광과 한명회가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대관들은 앞서 유자광이 대관들이 형식적으로만 비판한다

라고 말했던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번엔 작정하고 한 명예를 탄핵합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실록에 대간이 한 명예를 탄핵했다라는 기사 제목만 25일 동안 23번이나 등장하는데요. 
그리고 이에 맞서 한 명의도 계속해서 자기를 해임해 달라고 상소를 올려댑니다.

이쯤 되니 성종도 입장이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여기서도 한 명의 편을 들어주자니 그의 권세를 인정해 주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한 명예를 내쫓자니 아직 그의 권세가 너무 강하고 그렇게 성종이 고민하던 찰나 어째서인지 한 명예가 먼저 항복을 합니다. 
신이 발병이 난 지 오래인데 아직도 낫질 않으니 지료를 위해 간직을 해임하여 주시옵소서

병이 이전에도 여러 번 그런 얘기를 했으나 나는 곧 병이 나아질 거라 생각해 허락하지 않았소 허나 아직도 병이 낫지 않고 있다. 
하니 우선 병이 나을 때까지 쉬는 게 좋겠구려 이전까진 한명예가 사직을 청하며 이유로 들었던 게 유자광의 상소와 대관들의 탄핵을 못 이기겠다는 거였는데 여기서는 발병이 나서 쉬고 싶다고 하는 걸로 보아 정말로 항복을 한 것 같죠.

그런데 한 명예는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항복을 한 걸까요. 
제 생각에는 아마 한 명예가 생각하기에 어차피 성종이 성인이 된 이상 늙은 대신들로부터 권력을 되찾으려 할 테니 이전과 같은 피바람이 불기 전에 자기가 깔끔하게 승복함으로써 성종 시대의 시작을 알리려 한 거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한명회의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권력에서 물러난 한명회는 남은 여생을 한가로이 즐기기 위해 한강 근처에 엄청 호화로운 정자를 짓습니다. 
그리고 이 정자의 이름으로 자신의 호를 그대로 써서 압구정이라 짓는데요. 
압구정의 한자어는 친할 앞과 갈매기 구로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를 친구 삼아 한가로이 지낸다.

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 압구정을 짓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던 한명회 하지만 이미 권력을 상당히 잃은 그였기에 조정에서 한명회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갔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한명회는 결정적인 실수로 완전히 성종의 눈 밖에 나게 되는데

한명회는 조선에서는 이미 입지를 잃은 뒤였지만 아직 명나라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명회가 명나라 사신과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성종 12년 6월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이 한명회의 압구정에 가보고 싶어 하자

한명회는 성종에게 일을 허락받으려 합니다. 
명나라 사신이 압구정을 방문고자 하온데 신의 정자가 좁아서 그 인원을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하여 대만을 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서 대만이란 임금이 쓰던 천막을 말하는 겁니다.

자기 정자의 명나라 사신을 불러서 임금의 천막을 치고 놀다 이 얘기를 들은 성종은 내 생각에 그 정자는 허러 없애야 마땅하오 명사신이 명에 돌아가 그 정자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전하면 뒤에 우리 나라에 사신으로 오는 자마다 다들 그 정자에 가보려 할 것 아니오

또한 나는 강가에 정자를 짓고 노는 행위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도 않고 잔치는 제천정에서 열기로 합시다 제천정은 왕실 소유의 정자로 원래 명나라 사신이 오면 주로 이곳에서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삐진 한명회는 시는 지금 날씨가 매우 더운데 압구정이 좁아 사람을 다 수용하지 못할까봐 아랜 것이옵니다.

그러나 사실 신의 아내가 현재 투병 중이라 잔치를 제천정에서 열어도 신은 하지 못할 듯 하옵니다. 
한 명예가 삐져서는 말을 바꾸자 이번엔 승지들이 그를 물어뜯습니다 한 명의의 말은 지극히 무례합니다. 
처음엔 장막을 빌려달라더니 거절당하자 그제서야 말을 바꿔서는 안내 핑계를 대고 잔치에 나가지 않으려 하다니요

이는 분명 전하께서 거절하신 데에 불만을 품고 이를 표출한 것이옵니다. 
정헌대의 한명예를 처벌하여 주시옵소서 맞는 말이다. 
이전에 북경에 갈 때는 아내의 병세가 심각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었는데도 잘만 갔으면서 고작 잔치에 하루 참석하는데 아내의 병세를 핑계 삼아 나가지 않으려 하다니 이는 분명 내가 장막 대여를 거절한 데 대한 분풀이일 것이다.

한 명예의 집첩을 거두고 궁문하도록 하라 하지만 성종은 몇 달 뒤 다시 한 명예를 복귀시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명에는 세조 시절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데다 성종 자신도 사실 한 명의 덕분에 왕이 됐다는 걸 알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한 명예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서 이후 한 명예는 탄핵도 여러 번 당하며 일개 대신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다 성종 18년 한 명예는 73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는데요. 
오늘은 성종이 원상들로부터 권력을 되찾아오는 과정 그리고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한 명예의 권세가 추락하는 과정을 알아봤는데요. 
하지만 원상 몇과 한 명예가 죽었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진 않았겠죠.

아직 조정의 주요 관직은 한명회와 원상을 필두로 하는 훈구파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종은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신진 세력을 육성하기 시작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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