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조선 제21대 왕 영조 그는 왕이 되자마자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경종이 골골대며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누군가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고 병이 급격히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습니다.
당시에도 게장과 생강은 최악의 궁합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음식을 올린 이가 바로 영조였죠.
가뜩이나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의 미천한 신분이었으니 형 경종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누명과 적자가 아닌 방계 출신이라는 콤플렉스가 항상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개박생 공부와 자기 관리였습니다.
질릴 정도로 끊임없이 공부하며 신하들을 잘 컨트롤하고 백성들을 보살피기 위해 노력한 군주였죠.
하지만 이처럼 백성과 나라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기긴 했지만 자신의 아내와 자식에겐 심히 졸렬하고 겨려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조선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인 이모 화변을 일으키게 됩니다.
영조는 왕이 되기 전 11살의 나이에 결혼하였고 그 부인이 바로 정성왕후였습니다.
근데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든지 평생 그녀를 박대했습니다.
아예 그녀를 다른 궁으로 보내버리고 죽을 때까지 쳐다도 보지 않았죠.
심지어 정상 황후가 환갑이 되던 해 환갑 잔치를 열자는 상소를 보곤 귓등으로도 안 듣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예쁜 첩들만 총애하였으니 최악의 남편임에 틀림없죠.
또한 그는 최악의 아버지로도 역사의 길이길이 남게 됩니다.
영조가 42세일 때 그는 소중한 늦둥이 아들을 얻게 됩니다.
바로 사도 세상 그 전에 유일한 아들 효장세자가 있었지만 10살의 어린 나이로 요절하였기에 어린 늦둥이 아들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의 계승자였죠.
그래서 돌 지나자마자 역대 최연소로 세자에 책봉하였고 그만큼 세자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염병 기대가 커도 너무 컸습니다.
세자를 본인보다 더 완벽한 인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영조는 세자가 실수하거나 어린 모습을 보이면 뒤지게 까댔습니다.
체구가 커지던 세자를 보며 저 배대기 좀 보라며 한심해 했고 대리 청정 땐 그 딴 것도 제대로 처리 못하냐 그걸 왜 네 멋대로 결정하냐 등등 정신적으로 학대를 하며 세자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사도 세자는 겁탈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미쳐버렸고 영조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이게 됩니다.
탑투는 바로 조선 제14대 왕 선조 임진왜란 때 활약으로 가루가 되도록 할 인성 파탄자 선조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오로지 학문에 힘쓰며 그동안 개판된 나라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죠.
탁월한 인재 발탁으로 수많은 유능한 인물들이 활약했고 덕분에 조선의 학문과 문화의 꽃을 피우며 평화로운 시기 목는 성세를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되고 선조 인생의 비극이 시작되는데 일단 그가 현재까지 쌍용 먹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버리고 튀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광해군을 세자로 임명한 뒤 네 알아서 총알받이하고 난 튄다를 외치곤 명나라와 맞닿아 있는 의지까지 튀었습니다.
심지어 신하들이 반대해도 명나라로 망명하겠다며 땡깡부리는 졸렬함까지 보였죠.
그런데 다행히 18살의 강해군이 전국을 돌며 민심을 안정시키고 의병들의 사기를 올리며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됩니다.
또한 위대한 이순신 장군이 왜군들을 탈탈 털며 백성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는데 이때 질투심 하나는 기가 막혔던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원균이란 놈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물론 원규는 이순신이 힘들게 만든 판옥선 200척을 날리고 행방불명이라는 기가 막힌 엔딩을 선사했죠.
이에 선조는 이순신에게 사죄하며 복직시켰는데 이순신은 남아 있는 판호 속 12척으로 말도 안 되는 기적의 승리를 보여주며 조선을 구해냅니다.
지가 잘못해놓고 인성은 개판이라 목숨 걸고 싸운 의병들을 홀대하고 백성들이 추앙하는 광해군을 극도로 싫어하게 됩니다.
이에 항상 눈치 보며 가시 방석에 앉아 있던 광해군이었습니다.
근데 또 하필 전쟁 끝나고 새로 들인 왕비가 아들 영창대군을 낳아버립니다.
매우 야단난 상황이었죠. 방계 출신이었던 본인의 콤플렉스로 인해 적장자를 그 누구보다 원했던 선조였기 때문입니다.
광해군은 왕비가 아닌 후궁의 자식이자 백성들이 사랑하는 인물이었으니 선조는 영창대군을 세자로 바꾸려는 시도를 은밀하게 계획하였습니다.
하지만 병이 도진 선조는 영창대군이 두 살일 때 우리 영창대군을 잘 부탁한다라는 유언을 실현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덕분에 영창대군은 죽음을 맞이하고 광해군 또한 정신병에 걸려 폭군으로 전락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대망의 탑 원은 바로 조선 제16대 왕 인정
이 양반은 진짜 졸렬함과 무능함의 끝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인조는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낸 뒤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최악의 굴욕들만 선사 받게 됩니다.
믿도 끝도 없는 의심으로 이가의 난이 일어나 홀라당 빤스런하였고 정미란 병자호란이 터지며 쉼없이 빤스런만 하였습니다.
심지어 청의 황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까지 겪었죠.
이런 치욕들만 겪으며 의심병이 도져버린 인조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쉴드를 찾을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병자호란이 발생하고 청나라는 인조가 가장 아끼는 소현세자 부부를 볼모로 잡아갔습니다.
이런 침몰한 상황 속에서 인조는 그의 마음을 위로해 줄 희대의 악녀 소영 조 씨에게 푹 빠져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간사한 조 씨의 말만 들으며 나라를 개판치고 있었죠.
반면 소현세자는 매우 현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강빈의 말을 듣고 농사를 주관하여 엄청난 이윤을 남기며
학대받던 조선 포로들을 구출하는 데 힘썼습니다.
또한 청나라 높은 위치에 있는 관리들과 교류하며 조선을 핍박하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외교 활동까지 벌였죠.
근데 이런 소식에 인조의 귀에 들리자 인조는 붕괴하였습니다.
나는 굴욕이랑 굴욕은 다 받았는데 청나라랑 히히덕거리며 논다고 결국 볼모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소현세자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습니다.
청나라에서 본 신 문물에 감명받은 소현세자는 눈치도 없이 아버지 앞에서 서양 문물과 청나라의 발전에 찬양하였고 그러면 그럴수록 인주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소현 세자는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실록에서조차 조 씨의 악란한 모함과 소현 세자의 죽음이 독살이 아닌지 의문을 품고 있죠 인조의 인성질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조 씨의 속삭임에 넘어간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내이자 며느리 강빈마저 믿도 끝도 없는 의심으로 사형을 내렸습니다.
심지어 소현세자 부부의 세 아들들 모두 제주도로 입에 보내고 그곳에서 두 명의 아들은 병에 걸려 일찍 죽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나라를 세 번이나 말아먹고 악녀 조 씨한테 휘둘리며 소현세자 부부와 그 자식들을 가차없이 죽인 졸려란 인조는 이 사건 이후로 4년 뒤 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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