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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식67

사릉과 정순왕후 사릉은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조선 6대 왕 단종의 정비 정순왕후의 능입니다. 정순왕후가 묻힌 사릉은 해주정씨 가문의 선산입니다. 여기에 능이 만들어진 이유는 정수나무는 남편인 단종과의 사이에 후사가 없이 사별하면서 단종에 누인 경예공주의 아들이자 시조카인 정미수를 수양아들로 두면서 정미수의 집에 거주하였고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제사도 해주정씨 묘소에서 봉행해 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후 해주정씨의 선산인 사릉에 묻혔고 그래서 사릉 주변에는 지금도 해주정씨 가문의 개인 묘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숙종 24년 정순왕으로 복이 되면서 사릉이라 하고 왕릉 권역을 왕실에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왕릉이 조성되면 인근의 민묘들은 모두 왕릉권을 바깥으로 이장하였으나 이러한 사연으로 혜지정 씨.. 2022. 5. 19.
이방원의 끝없는 숙청 재물을 탐했지만 끝까지 이방원에게 순종했던 하루는 살아남았지만 대간들의 탄핵 상소를 막겠다며 안하무인처럼 굴던 이숙번은 결국 유배지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이숙번은 이를 갈고 있었지만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일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 숙번마저 유배를 보낸 이방원은 영의정 유정현과 공주 판사 황희를 불러 이품 이상의 모든 문관과 무관을 입궐시키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신하들을 대대적으로 불러들이는 이유에 대해 영의정이 무슨 연유인지를 물었는데요. 이 방원은 세자를 폐하고 다시 세우는 일을 논의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 방원은 양녕에게 충분한 기회를 줬는데요. 대신들과 함께 정사를 논할 기회를 달라고 청했을 때도 이방원은 세자에게 그리 해보라고 허락해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자가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었.. 2022. 4. 28.
한명회와 성종 성종은 어린 나이에 왕 위에 올랐지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성군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6년의 수렴 청정 기간 동안 성실히 학문에 임했으며 어려서부터 성군의 자질을 여실히 보였는데요.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성종이 성인이 되자 정희왕후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그에게 친정을 맡기면서 마침내 성종은 어엿한 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조정의 권력은 원상에게 쏠려 있었기에 성종은 이를 되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성종이 친정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아직 권력은 원상들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원상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종이 친정을 시작하기 전에 일어난 일부터 한번 살펴볼까요. 원상들은 교대로 돌아가면서 승정원에 출근하여 성종과 정희왕후에게 자문.. 2022. 4. 28.
조선의 칼 환도 이거 보면 환도가 일본도 베꼈다는 말이 나올 만했네 오랑이 무기 사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뭔가 여러분 우리는 저번 시간 고려시대의 칼펜에서 환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한번 알아봤습니다. 환도는 몽골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칼로 일본도를 베껴 만들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죠. 하지만 아이된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고 이런 낭설이 퍼지게 된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임진왜란 때문이었죠. 자 그렇다면 대체 이 환도에게는 어떤 역사가 있었길래 이런 말이 나온 걸까요. 그리고 임진왜란은 환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요. 지금 한 번 살펴봅시다 조선시대 환도의 역사 환도는 조선시대 내내 애용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칼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외화를 가진 거의 대부분의 칼을 환도라고 통칭했는데요..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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